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기쁜 소식 전하는 두 제자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4-25 수정일 2017-04-26 발행일 2017-04-30 제 304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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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이민의 날) (루카 24,13-35)

오늘 복음에서 두 제자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엠마오로 내려가려 했는지 명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언제나 당신이 몸소 가시려는 곳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에서 볼 수 있듯이(루카 10,1; 19,29), 이번에도 당신에 앞서 당신에 관한 소식, 곧 예수님과 관련해서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소식을 전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두 명씩 길을 나서는 것은 유다 관습에 남자 두 명의 증언이 중요하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리스도교의 신앙생활 자체가 공동체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마태 18,20; 1코린 14,29 참조)

두 제자는 엠마오를 향해 길을 가면서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들, 곧 예수님의 체포와 죽음에 관한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그들이 “토론”하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토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시제테오는 루카 22,23에서도 발견되는데, 여기서는 예수님을 배반한 자가 누구일까에 관해 토론합니다. 이렇게 보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당신이 살아 있을 때나, 돌아가셨을 때나 계속해서 토론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토론만 하던 제자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복음서 저자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루카 25,15)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슨 주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가를 묻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합니다.(루카 24,18)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살아계셨을 때 늘 하시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모세와 예언자로부터 시작해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해 말씀하신 기록들을 예로 들면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십니다. 메시아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반드시 영광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분의 성경 풀이를 들으면서, 제자들의 마음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루카 24,32) 모든 것이 하나씩 둘씩 기억나기 시작합니다. 그분이 누구이신지 명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깨닫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더 머물고자 합니다.

드디어 식사 자리가 열리고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제자들에게 떼어서 나누어주십니다. 그때 비로소 제자들은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늘 하시던 행위를 보고 그분을 알아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사라지십니다. 그리고 엠마오의 두 제자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급히 되돌아와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교회는 오늘날까지 미사를 봉헌하면서 엠마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기념합니다. 교회는 미사를 통하여 예수님에 관한 구약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분의 가르침과 설명을 들은 뒤, 빵을 떼어 나누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함께 모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성제야말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 곧 엠마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은 미사가 끝난 뒤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기 위해 각자의 십자가가 놓여 있는 예루살렘으로 뛰어갑니다. 그렇게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서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처럼 미사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지 되돌아봅시다. 아니면 눈이 열리지 않아 아직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봅시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