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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기획] 특별 인터뷰 -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 ‘그리스도인다운 선거 문화란?’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rn사진 성슬기
입력일 2017-04-18 수정일 2017-04-18 발행일 2017-04-23 제 304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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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위협과 ‘탈진실’의 시대 변화시킬 책임 있는 대통령 필요”
정교분리, 정치-교회 결탁하는 ‘정교유착’ 금지하는 것
교회는 구원 위해 정치 질서에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그리스도 보여주신 삶과 가르침 따라 선악 구분하고
배려와 나눔, 생명존중 문화 바로 잡기 위해 투표해야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스도인은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앞서 하느님 나라 시민이다. 참정권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갖는 중요한 권리 가운데 하나라면, 교회에서는 권리를 넘어선 ‘의무’라고 강조한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할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얼굴을 붉히는 것은 그리스도인다운 선거 문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 5월 9일 사상 초유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소회를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격동의 정치 상황을 정평위 위원장으로서 마주하는 일은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만큼 힘든 시간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잇달아 터지는 각종 사건 사고들이 우리 시대와 교회의 감추어진 죄의 뿌리를 드러내는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대선을 매우 막중한 시대적 선택의 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신자들과 국민들의 바람처럼 냉철한 지혜와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선거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 최근 세월호 3주기 기념미사 강론에서 세월호 사건을 십자가 사건이며 부활사건으로 해석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기성세대들이 통회의 마음과 역사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에서 성장에 눈이 멀어, 원칙과 양심을 가볍게 버린 우리의 삶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 평화가 우리들의 선택과 결단에 놓여있는데 너무나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귀중한 순간들을 놓쳤습니다. 큰 죄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시대의 잘못된 선택으로 일어난 살인 사건입니다. 그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드러났고, 우리 사회가 반성했습니다. 그 반성이 국정농단 사태를 만났을 때 전 세계가 놀란 평화로운 촛불집회로 나아갔다고 봅니다.

그동안 우리는 선거 때마다 정책과 정치역량, 성실성, 책임감 등을 꼼꼼하고 냉철하게 살피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어이없는 죽음이 없도록 사회제도적 개선과 삶의 변화에 힘쓰고, 정치인들을 보다 냉철한 눈으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세월호 희생자들의 공이며 우리의 사죄입니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은 십자가 사건이며 부활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며 일종의 ‘의무’라고 강조하셨지만, 종교의 정치 참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정교분리는 교회가 정치적 사안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치와 교회가 결탁하는 ‘정교유착’을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정교분리의 참된 의미는 가톨릭교회 가르침대로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246항)는 것입니다. 공권력의 남용에 항거하여 자연법과 복음이 보여주는 범위 내에서 공동선과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모든 활동의 정당성이 부여됩니다.

촛불집회에 대한 교회의 지지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지요. 교회는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를 견지하며 인간 존엄성을 저해하는 모든 세력을 박해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항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증거이며 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간 한국교회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나 원칙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권좌에서 내려오게 했습니다. 정의가 빛을 발한 사건인 동시에 슬픈 우리 민주주의 자화상을 드러냈지요. 이 촛불은 이제는 책임 있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올바른 선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와 주변 강대국 간의 미묘한 역학관계 안에서 역사적·시대적 사명감을 가진 정치인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한 정권에 의해서 급작스럽게 후퇴하고 사장된 민족화해를 위한 노력이 되살아나야 합니다. 국민의 선택은 이 점을 긴 시대의 안목으로 판단해야겠지요.

사드 배치도 명백히 교회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교회는 평화가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를 통해 달성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평화는 전쟁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만이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전쟁범죄를 법적 효력조차 없는 합의문과 위로금으로 지워버리려는 움직임은 진리의 빛을 가로막는 어둠의 세력입니다.

최근 옥스퍼드사전이 현대 시대를 규정하는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꼽았습니다. 객관적 사실보다 사람의 감정과 개인적인 신념을 자극하는 정보가 진리나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태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 점이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거짓 정보를 식별하고, 거짓 공약으로 우리의 감정적 위안이나 흥분을 자극하는 사람들을 거부해야 하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의 진리는 하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과 그 가르침이 선악을 구분하는 잣대입니다.

-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시급한 과제들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생명과 나눔, 공존의 코드가 정치와 삶의 코드가 되어야 합니다. 전 우주와 인간을 창조주와 그의 사랑에 입각해서 이해할 때, 부활의 빛으로 인간의 죄와 용서를 바라볼 때 참다운 용서와 사랑과 삶의 문화가 꽃필 수 있습니다.

패러다임 전환, 그렇습니다. 섬김과 나눔과 생명을 존중하는 공존의 문화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단편적인 당위논리나 윤리의 한계는 이미 여러 사건으로 드러났지요. 종교가 제 자리에서 진리와 사랑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 증거가 현대인의 불안과 위기감을 위로하고 타인을 향한 배려와 나눔, 생명존중의 행동으로 이끌기 때문이지요.

- 끝으로 이번 대선을 맞으며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분명한 사실은 정치 수준은 바로 국민의 수준입니다.

우리는 보편지향기도 때에 자주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정치인들을 위해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치는 이 기도의 내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의 날이 오기를, 우리나라에 정의와 평화가 바로 서기를, 정치인들이 올바른 정치를 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우리가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돕기를,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절실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선거 문화는 어떤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지에 대해 함께 건전하게 토론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둠의 시대가 저물고 빛의 시대, 희망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을 축하드리고, 부활의 삶이 계속되길 기도드립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rn사진 성슬기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