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영성=삶의 원리 ②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
입력일 2017-03-21 수정일 2017-03-21 발행일 2017-03-26 제 303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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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신앙인, 성령을 따라 사는 삶
인간 존재 이루는 세 가지 차원
그리스도인 선택은 ‘성령의 이끄심’

찬미 예수님.

지난주에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삼분법적 인간학’에 따라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세 가지 차원 곧 ‘몸의 차원’ ‘정신의 차원’ ‘영의 차원’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몸의 차원이나 정신의 차원은 어쨌든지 간에 인간적 차원이라는 것, 하지만 하느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면서 활동하시는 영의 차원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신적인 차원이라는 것이었죠.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그럼 인간의 영혼은 어느 차원에 속하느냐?’라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인간 영혼은 어디에 속할까요? 네. 우리말로 ‘영혼’과 ‘영’이라는 말들이 서로 비슷해서 혼용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정신’의 차원에 속합니다. 비물질적이고 보이지 않지만 영혼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일부분인 것이죠. 이에 반해 영의 차원에서 활동하시는 성령께서는 인간의 일부분이 아닌 하느님이시죠. 그렇기 때문에 영의 차원이 인간적인 차원이 아닌 신적인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우리는 몸의 원리나 마음의 원리가 아닌 영의 원리, 곧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활동하게 되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세 영역들은 저마다의 활동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의 차원에서라면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욕구들에 따라서, 마음 차원에서는 또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영의 차원에서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시죠.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각각의 차원들이 서로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한 사람의 전체적인 삶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오늘 할 일을 성실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 정신 차원에서 일어나는 원리죠. 그런데 요즘 환절기 탓에 감기에 걸렸다거나 알레르기가 심해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몸 차원의 원리는 우리로 하여금 휴식의 시간을 가지라고 요구합니다. 정신 차원의 원리를 따라 아무리 일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더라도 몸 차원의 원리가 영향을 주는 것이죠.

몸의 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이나 어떤 어려운 일을 앞두고 있을 때면 긴장감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몇날 며칠을 밤새우다시피 지내도 피곤함을 못 느끼는 경우가 있죠. 또 ‘화병 났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과 관련된 일이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바로 정신 차원의 원리가 몸 차원의 원리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영의 차원은 어떨까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절제와 희생을 결심하신 분들 많이 계시죠? 기도와 희생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에 더 깊이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 바로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르는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매님이 사순 시기 동안 매일 저녁 아홉시에 묵주기도를 바치기로 마음먹으셨다고 생각해 볼까요? 처음 며칠은 시간을 잘 지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아주 재미있는 TV 드라마가 시작을 한 거예요. 이 드라마가 하필이면 매주 수요일 목요일 저녁 8시 50분에 시작합니다. 그럼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래도 하느님께 드린 약속이니까 제시간에 기도를 하고 나서 재방송을 볼까요? 아니면, 일주일 내내도 아니고 수, 목 딱 이틀이니까 이 두 날만 드라마 시작 전이나 끝난 후에 기도를 하기로 마음 정하실까요?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영의 차원의 원리에 우리 마음 차원의 원리가 영향을 주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존재와 삶을 이루는 세 가지 차원들은 서로 각각의 원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원리들이 제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한 사람의 구체적인 선택과 행동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이 세 차원의 원리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움직여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영성을 ‘삶의 원리’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세 가지 차원의 원리들 중에서 어느 차원의 원리가 내 삶의 근본 원리가 되는가’라는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몸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정신 차원의 원리를 따라야 할 때도 있죠. 우리가 순수한 영적 존재가 아닌 이상, ‘나’라는 사람의 인간적인 부분인 몸의 차원과 정신 차원의 원리들을 따라야 할 순간들이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볼 때 몸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살아간다고 하면 그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정신 차원의 원리에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면 또 어떤 모습일까요?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죠.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갈라 5,19-21)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몸이나 정신 차원의 원리를 주로 따라 사는 삶이라면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육의 행실이 더 많이 드러나는 삶이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몸 차원의 원리를, 때로는 정신 차원의 원리를 따르더라도, 근본적으로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살아간다면 또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갈라 5,16)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 안에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얻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차원의 원리를 내 삶의 근본 원리로 삼고 살아가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성령의 인도’ 곧 영의 차원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에, ‘영성(영-썽)’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삶의 원리’가 되는 것이죠.

이처럼, ‘영성’이라는 말을 ‘삶의 원리’로 이해한다면 ‘불교 영성’이나 ‘생태 영성’과 같은 말의 쓰임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교 영성’은 ‘불교 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뜻하겠죠. ‘생태 영성’은 ‘환경을 보존하고 생태계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따라야 할 삶의 원리’라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영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삶의 원리’인 것이죠.

자, 이제 ‘영성’을 삶의 원리로 삼으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