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Ⅲ - 세번째 이야기, 그 길의 한 가운데서

입력일 2017-03-21 수정일 2017-03-21 발행일 2017-03-26 제 303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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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성공. ‘고행’이라 생각하지 않고 기쁘게 주님을 위해 봉헌하는 시간을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힘들다. 좀 불편하고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왜? 이 고행을 하고 있지? 그 의미를 매 순간 곱씹고 자세를 다잡아본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나의 이 십자가가 이웃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가길 기대하면서.

■ ‘니코틴 의존도, 뒤로 돌앗!’ - 남승현 수습기자

취미로 컬러링북을 선택했다

헉, 몰입은커녕 스트레스만…

모든 것 봉헌하며 기도한다

금연 24일째. ‘사순고행’의 중반을 넘어섰다. 금연 3~7일 정도가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하지만 부활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십자가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수많은 금연 길라잡이 방법들도 공허한 외침과 같이 느껴진다. 담뱃갑에 새겨진 혐오스러운 경고 이미지도 안보면 그만이다.

복지부가 운영하는 ‘금연 길라잡이’ 사이트를 통해 니코틴 의존도 평가를 해봤다. 나의 니코틴 의존도 평가 결과는 ‘높은 의존도’였다. 나의 흡연습관은 ‘자극 추구형’이다. 니코틴이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효과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유형이다. 담배를 정신집중, 창의력, 근무의욕을 높이는 자극제로 이용하는 경우다. 담배를 통해 얻었던 자극을 대신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취미를 가져라!’

흡연을 대신하는 취미를 만들었다. 운동, 산책, 독서 등 많은 방법이 있지만 ‘컬러링 북’을 택했다.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고르고 색연필도 구입했다. 시작하고 난 뒤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다. 무슨 색을 칠할까, 어떻게 칠할까 고민하는데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한 번 시작하면 1~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이런 취미 때문에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물을 마셔라!’

흡연 욕구가 일어날 때마다 물을 마셨다. 몸 안에 있는 담배와 관련된 독소들이 빨리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감내해야 할 점이 있다. 화장실을 자주가게 된다. 화장실은 담배의 성지(聖地)같은 곳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화장실이 금연구역이지만 흡연을 생각나게 하는 그윽한 분위기는 물리치기 힘들다.

‘커피를 줄여라!’

오히려 커피를 대체재로 사용하고 있다. 다짐 초반 흡연욕구를 줄이기 위해 커피는 하루에 한 잔만 마시기로 결심했었다. 참 이상하게도 금연 기간이 길어질수록 커피에 의존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 식사 후, 퇴근 시간 등 니코틴의 빈자리를 카페인이 대신 채워주고 있다. 이러다 내년 사순 시기에는 ‘커피 끊기’를 시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솔직히 금연 전문가들이 내놓은 방법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참는 것만이 답일까. 그래도 좋은 점은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담배를 핀 후 냄새를 풍길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쏘아대는 따가운 시선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번 사순 시기는 금연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 시작했다. 힘들 때마다 스스로 되새기는 성경 말씀을 떠올려본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코린토 10,13)

금연하는 것. 내 능력 이상의 시련은 아니라고 용기를 가져본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하느님께 인내의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한다.

■ ‘울화비용? 나눔비용!’ - 성슬기 수습기자

참기 힘든 쇼핑의 유혹…

더 많이 소비하면 행복할까

가난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서울역으로 가 주세요.”

동트기 전, 아직은 어둑한 오전 6시20분. 지방으로 출장 가던 날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이동 가능한 시간이었지만 큰맘 먹고 택시에 올라탔다. 늦게 일어났다거나 몸이 피곤했던 건 아니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준비한 나에게 선물하는 작은 위로이자 여유였다.

나에게 택시 뒷자석은 나른한 오후에 마시는 향긋한 커피 한 잔, 산 정상에서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처럼 달콤했다. 그런데 가계부에 남아있는 금액을 보곤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헉! 생활비가 ⅓도 남지 않았다니!

견물생심.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꼭 사지 않더라도 집 앞에 있는 쇼핑상가를 한 바퀴 정도 돌아야 집에 가곤 했다.

하지만 사순체험 이후 모든 걸 ‘돌’처럼 보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처음 열흘 정도만 그랬다. 이제는 매일 매일이 고비다. 오다가다 간식거리를 사고 마음에 쏙드는 옷이라도 하나 ‘지르는’ 순간 목표 금액을 초과 지출하게 된다. 그런데 참아내기 쉽지 않다.

‘주님, 저 마땅한 출근복도 없다고요!’

최근 일간지에서 ‘X발비용’이라는 신조어가 젊은층 사이에서 회자된다는 기사를 봤다. ‘울화비용’, ‘홧김비용’이라고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

그동안 사용한 택시비가 어쩌면 이 비용일지 모른다. 나를 비롯해 꽤 많은 현대인들이 소비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단 사실이다.

돈을 최대한 적게 써야하는 나는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행복은 대단하지 않은 곳에 있었다.

최근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시리아 어린이들을 위해 영상편지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에게 내 편지와 기도가 희망이 된다고 생각하자 ‘내가 여기 그들과 함께 살아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차올랐다. 작은 일에 더더욱 감사하기 시작했다. ‘돈 쓰지 말라’면서 가방에 간식을 잔뜩 넣어주는 동기의 모습,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에 달달한 커피를 사준 선배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가슴에 팍팍 와 닿았다.

풍요로웠을 때는 끊임없이 나만 생각했다. 돈이 많으면 이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져 이웃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진다. 복음에서 부자가 문 앞에 온 라자로를 모른 척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자신이 가난해져야 했다. 그래야 멀지 않은 이웃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돈을 적게 쓴다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 어머니로부터 “오늘은 집에 바로 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하느님께서 이렇게 불러주시는 것 같다. 하느님 자녀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주님 저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 ‘쓰레기를 공부하라’ - 권세희 수습기자

이제 쓰레기 줄이기를 넘어

생태 환경까지 생각하게 됐다

불편하다는 투정이 사라진다

사순체험을 하며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초반엔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 그리고 우리가족’이라는 작은 부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부분들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어렴풋이 알았던 쓰레기의 무분별한 매립 문제, 쓰레기로 신음하는 생태계, 그리고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까지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가령, 쓰레기 관련 도서를 찾아 읽으면서 처음에는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에만 신경을 몰두했지만, 이젠 ‘내가 줄인 쓰레기들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가 만약 쓰레기를 줄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쓰레기와 생태계에 관한 내용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지구라는 곳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일부 중 하나’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2012년 TV를 통해 방영됐던 ‘하나뿐인 지구-네팔 쓰레기의 강 바그마티의 재앙’ 프로그램에서는, 급격한 도시화로 흘러든 생활폐수와 쓰레기가 모여 강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하게 오염된 그 강은, 인근 주민들에게는 삶에서 뗄 수 없는 생활터전이었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은 떠다니는 쓰레기를 주워 생활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도 쓰레기 산이 무너져 내려 사람이 깔려 죽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는 더 무거운 모습으로 다른 이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쓰레기’ 문제는 우리의 삶과도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해 작은 노력들을 새로 시작했다.

3일 동안 조리할 음식 목록표를 만들고 다른 날은 남은 재료나 잔반을 이용해 음식물쓰레기를 최대한 배출하지 않는다. 장을 본 후 음식물을 한 끼 분량으로 담아서 구분해놓으면 음식물이 부패해서 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또 건조망을 구입해 밑에 신문지를 깔고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 음식물쓰레기를 널어 베란다에서 말려봤다. 전기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음식물쓰레기 부피를 줄이고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또 1주일에 하루는 노쇼핑데이(No shopping day)로 정해 아무런 소비도 하지 않았다. 간단해보이지만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것은 꽤 불편했다. 사치품은 아니지만 일회용 이쑤시개와 면봉, 화장솜 등을 사지 않으니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쇼핑데이를 통해 ‘지출’에서도 새롭게 고민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제 나와 가족들이 줄이는 쓰레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느님께서는 사순 시기 동안 ‘나를 넘어 더 많은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주시려고 하신 모양이다. 쓰레기에 대해 알수록 더 궁금해지고 더 불편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불편함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정의가 점점 변해간다. 불편함을 의식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