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77) 따뜻한 배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3-21 수정일 2017-03-21 발행일 2017-03-26 제 303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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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영화 한 편이 개봉됐습니다. 일본의 천주교 전파와 박해,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원작은 일본의 탁월한 문학 작가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지인분들이랑 보려고 약속은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분은 몇 년 전에 일본 고우토 성지순례를 함께 했던 어르신이었습니다. 가볍게 안부 전화를 나누다가 그 영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보러 갈 시간은 없었고, 이제 곧 개봉관에서 내릴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르신께서는 ‘좋은 영화는 머리를 식혀줄 뿐 아니라, 생각을 전환해 줄 수 있다’면서 바로 다음 날 함께 영화를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날, 무거운 머리를 붙잡고 극장으로 갔더니 어르신과 친구분들 네 분이 함께 나오셨습니다. 그분들 역시 함께 일본 성지순례를 했던 분들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영화 시간은 2시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놀란 것은 ‘순교와 배교’의 문제를 다룬 좋은 영화였지만, 극장 안은 거의 텅 비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리 아쉬운지….

아무튼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스승의 배교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다며 스승을 찾아 직접 일본으로 간 두 명의 신부가 극적으로 일본 신자들과 만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단지 배우들의 연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애절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절한 박해를 견뎌내면서 끝까지 숨어서 천주교 신앙을 지키는 신자들이, 마침내 신부를 만나자 이제 성사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격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계속되는 박해 동안 신부를 지켜주고자 했으며, 체포된 후에는 순교도 마다하지 않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가볍게 차 한 잔 마시는데, 어르신 중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순 시기라 그런지, 이 영화는 두 번을 봐도 감동이에요, 감동!”

그 말을 듣는 순간, ‘헐…. 두 번이라! 그럼 나 때문에 같은 영화를 두 번 보셨구나!’ 밀려오는 죄송함과 미안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고마운 어르신들! 나를 위해서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봐 주시고. 그리고 나와 함께 영화를 봐서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시는 그 따스한 배려.’ 아마도 박해 시기 역시 신자분들도 모진 고문 앞에서 배교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성직자와 신자들이 나누는 따스한 배려가 결국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이었으며, 그 마음이 결국은 순교를 가능케 하는 동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어르신에 대한 감사를 생각하며, 살면서 사제를 위해 마음을 써 주시는 고마운 신자분들 생각에 가슴이 뻐근해집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