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세상 일깨우는 그리스도의 빛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3-21 수정일 2017-03-22 발행일 2017-03-26 제 3037호 1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사순 제4주일(요한 9,1-41)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던 사울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판단하여 움직이다가 하느님 눈 밖에 납니다.(1사무 13,13 참조) 그래서 오늘 1독서에 나오듯이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기름을 가지고 이사이의 아들들 가운데 당신이 새롭게 뽑으신 사람 하나를 찾아가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뽑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이의 아들들을 찾아간 사무엘은 엘리압이 하느님께 선택받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합니다.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컸던 사울처럼 엘리압도 듬직하게 큰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1사무 11,23; 16,6) 하지만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인물은 이사이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작은 막내아들 다윗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눈은 사람들의 눈과 다르다는 것, 하느님은 겉모습보다 참된 마음을 보는 분이심이 드러납니다.(1사무 16,11)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보기에 위대해 보이는 인물이 아니라, 작지만 당신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겸손하고 가난한 이들을 통해 당신 일을 하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눈이 사람들의 눈과 다르다는 것은 오늘 복음에서도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고 그가 눈이 먼 이유가 자신의 탓인지, 부모의 탓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가 눈이 먼 이유는 하느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죄인 취급을 당하던 가련하고 가난한 소경을 통해 당신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하느님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없애러 오신 메시아이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소경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눈을 뜨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게 되어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렇게 해서 소경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 소경보다 낫다고, 소경보다 잘 본다고 여기던 바리사이들은 소경도 이해하게 된 진리를 보고서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도, 그분의 기적을 체험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된 소경도 모조리 죄인이라고 비난하며 공격합니다. 이런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39)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처럼 스스로 무엇인가를 잘 본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이들을 두고 “잠자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눈을 감고 있기에 죽은 이들과 같고, 그래서 자신이 죄인임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이런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우리는 종종 예수님 곁에 있던 바리사이들처럼 무언가를 좀 본다고, 무엇을 좀 안다고 자만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보다 부족해 보이는 이들을 하찮게 여기고, 그들보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하곤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소경임을 인정하고, 주님께 눈을 열어주시라고 청합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를 비추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깨닫게 해 주시라고 주님께 간구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시고 당신 빛으로 우리 앞을 비추어주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올바른 눈으로 하느님과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소경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통해서도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