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그리스도교적 미니멀리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7-03-21 수정일 2017-03-21 발행일 2017-03-26 제 303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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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이웃 선익 추구하는 ‘자발적 가난’ 실천
교회는 비움으로 채우는
소박한 삶의 방식 권고
소유에 대한 집착 버려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기 몫의 재물을 마다하고 ‘자발적 가난’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리스도교적 미니멀리즘의 모범이다. 사진은 이탈리아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던 방을 재현한 장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최근 현대 소비주의에 저항하는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미니멀리즘’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비움으로써 채우는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니멀리즘을 포함해왔다. 소박한 모습으로 화제가 된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그가 교황명을 따온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두 ‘프란치스코’의 삶은 미니멀리즘의 차원을 뛰어넘는 ‘그리스도교적 미니멀리즘’의 모범이다.

2010년 「두 남자의 미니멀 라이프」(책읽는수요일)라는 책을 펴내면서 화제가 된 조슈아와 라이언 두 미국 청년은 미니멀리즘을 “쓸데없는 것들에 나를 빼앗기지 않을 자유”이자 “내 삶을 만족으로 채우는 행복”이라고 말했다.

여섯 자녀를 둔 마티나 크라이처(마리아·미국 거주)씨는 자신의 블로그(www.catholicsistas.com)를 통해 이러한 미니멀리즘과 그리스도교적 삶은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두 삶의 방식에 대해 “과도한 소유는 감사하는 마음을 잃게 한다”며 “소유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면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전한다. 그래서 “‘미니멀 라이프’는 현대 소비주의 문화의 대안”이라고 확신한다.

3년째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김윤환(마리아·45)씨도 “미니멀리즘은 신앙생활과 닮았다”고 경험담을 밝혔다. 그는 “누구나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수도승처럼 살 필요는 없다”면서 “각자 자기 상황에 맞게 꼭 필요한 것만으로 사는 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니멀리즘과 그리스도교적 삶은 물질의 과도한 소유를 포기하고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닮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미니멀리즘과 그리스도교적 미니멀리즘에선 또 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적 미니멀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자발적 가난’의 실천이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자신의 평화를 추구하지만, ‘자발적 가난’은 하느님과 이웃의 선익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교황궁과 대형차를 거절하고, 게스트하우스에 거주하며 작은 차를 타고 다닌다. 교황의 전세기에는 1등석이 없고, 플라스틱 제품 시계를 착용한다. 추기경 서임 때 축하객들이 로마로 오는 대신 비용을 아껴서 가난한 이웃을 돕도록 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소비주의를 경계하고, 미니멀리즘과 닮은 삶의 방식을 독려했다. 그는 “환경 훼손의 문제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206항)한다며 “시장이 상품 판매를 위하여 강박적 소비주의를 촉진하는 경향이 있기에, 과잉 구매와 불필요한 지출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쉽다”(203항)고 경계했다. 또 ‘탐욕적 소비주의’를 거슬러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예언적이고 관상적인 생활 방식을 독려”(222항 참조)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름을 본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 미니멀리스트이다.

성인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기 몫의 재화와 상속을 마다하고, 옷 하나만 걸친 채 세상 밖으로 나아갔다. 이후 노동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고, ‘자발적 가난’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갔다.

가정주부 최유수(체칠리아·38)씨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갖가지 소유물과 세간살이 규모를 줄이는데 5년째 힘쓰고 있다. 처음엔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이웃과 지구 공동체에 대한 유대감이 생기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최씨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신앙에 대해서도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면서 “무엇보다 가난하게 살라는 성경 말씀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미니멀리스트는 자기만족만 찾는 ‘자린고비’나 ‘스크루지’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스도교적 미니멀리즘은 하느님과 이웃에 헌신하면서,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자발적 가난’이다. 그리고 ‘가난’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