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호 의무
헤세드는 흔히 ‘자비’라는 추상적 의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디 ‘구체적인 상호의무’를 뜻하는 말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을 때, 아비멜렉과 그의 장수인 피콜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그대에게 헤세드(호의)를 베푼 것처럼… 그렇게 대해 줄 것을 여기에서 하느님을 두고 나에게 맹세해 주시오”(창세 21,23)라고 말했다. 이렇게 계약이란 ‘서로 헤세드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헤세드가 구체적인 상호 의무를 의미함을 잘 알 수 있다. 여호수아가 예리코 성읍을 점령할 때, 라합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라합은 하느님의 크신 업적을 이미 알고 있었고,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에게 적극 협조했다. 그녀는 정탐꾼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헤세드(호의)를 베풀었으니,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안에 헤세드(호의)를 베풀겠다고 주님을 두고 맹세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여호 2,12) 그녀는 증거로 신표를 받았고, 그들은 서로 약속을 실천했다.
요셉 집안이 베텔로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요셉 집안은 정찰꾼을 보냈고, 그 성읍에서 어떤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헤세드를 약속한다. 정찰꾼들은 “성읍으로 들어가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그대에게 헤세드(은혜)를 베풀겠소”(판관 1,24)라고 말했다.
모세는 주님과 맺은 계약을 설명하면서 헤세드가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하느님께서 백성을 선택하셔서 계약을 맺어 주신 것은 우리에게 크신 자비(헤세드)를 약속해 주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도 당연히 하느님께 사랑의 실천(헤세드)을 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모세의 말씀을 들어보자. “너희가 이 법규들을 들어서 지키고 실천하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도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과 헤세드(자애)를 너희에게 지켜 주실 것이다.”(신명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