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생명의 물 주신 예수님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3-14 수정일 2017-03-15 발행일 2017-03-19 제 3036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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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요한 4,5-42)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를 탈출해서 시나이 산으로 향해 떠납니다. 광야에서의 여정 가운데 마라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시고(탈출 15,22-27),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여주십니다.(탈출 16,1-36) 그런데 또다시 이스라엘은 르피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이쯤 되면 성경 독자들은 슬슬 이스라엘 백성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왜 이렇게 불평불만으로 가득한가? 하지만 시나이 반도를 직접 다녀온 적이 있는 분들은 이스라엘이 불만을 터트릴 만큼 광야 길이 힘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광야에서 물 없이 한 시간만 걸으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어느 민족이었다 하더라도 목마름 앞에서 불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의 잘못은 목마름 때문에 불평불만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그분의 계획 자체를 문제 삼은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빼내어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가고자 하시는 계획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광야를 거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광야의 배고픔과 목마름에 걸려 넘어진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왜 데려왔냐며 따지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라고 말하면서 주님이 그들과 함께 머무신다는 것 자체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다시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물을 주십니다. 호렙, 곧 시나이 산의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마시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시나이 산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들이 마시고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하여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율법을 받아 하느님과 더불어 살게 된다는 이야기와 묘하게 연결됩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 그리고 그 계약을 맺은 모세가 바위라고 한다면, 거기서 흘러나오는 율법이 바로 이스라엘을 살리는 물입니다. 이스라엘을 영원한 나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물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이며, 이스라엘은 그 물을 통해 하느님 약속의 수혜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이야말로 생명의 물을 가져다주시는 진정한 바위이심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이심을 말해 주십니다. 모세가 주는 물인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이라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집트가 상징하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으로 약속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하느님과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 역시 십자가라고 불리는 홍해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십자가라고 불리는 광야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겪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불만을 터트리고 짜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결코 하느님의 약속과 계획에 의심을 품거나, 왜 자신을 하느님께로 불러왔냐고 따져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이 자신과 함께 머물고 계시다는 것에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증명되었음을 기억하고(2독서), 주님 목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맙시다(화답송). 주님이야말로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주시는 바위이심을 기억합시다(복음 환호송).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룩하신 새로운 계약의 백성인 우리 모두를 젖과 꿀이 흐르는 하느님 나라로 받아들여 주실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