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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설정 90주년 특집]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

이주연 miki@catimes.kr , 사진 서상덕
입력일 2017-02-21 수정일 2017-02-21 발행일 2017-02-26 제 303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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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되살릴 의지 새롭게 다집시다”
공산군 위협에 굴하지 않고 신자 지켰던 평양 성직자들 시복 추진 본격화되는 지금 성모께 기도로 도움 청해야

황인국 몬시뇰이 평양교구 주교좌 관후리성당 모형 앞에서 교구 설정 90주년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3월 17일로 평양교구(교구장 서리 염수정 추기경)가 교구 설정 90주년을 맞는다. 평양교구는 성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초기 한국교회 수많은 순교자들이 거쳐갔던 ‘신앙의 고향’이다. 일제강점기 암흑 시기에는 민족의 자존심과 독립에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많은 이들에게 빛을 안겨 주었고, 해방 이후에는 공산정권에 맞선 새로운 순교자들의 피로 적셔져야 했다. 그렇게 평양교구의 90주년은 민족의 역사와 수난을 함께한 교회의 기억이다. 평양교구 설정 90주년 특집을 통해 그 의미를 생각해본다.

“평양교구의 90주년을 기념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100주년을 향해 교구 재건의 의지를 새롭게 세우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양교구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은 3월 17일 교구 설정 90주년을 맞는 소감을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80주년 때 100주년은 꼭 평양에서 맞이하자고 다짐했었는데 다시 10년을 지내고 9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는 황 몬시뇰.

2017년은 교구 설정 90년이라는 의미와 함께 평양교구가 평양대목구에서 교구로 승격된 지 55주년을 맞는 해다. 2월 22일 첫 시복 재판을 시작으로 홍용호 주교를 포함한 24명의 평양교구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 추진 작업이 본격화되는 시기로서도 깊은 뜻을 남기고 있다.

평양 출신으로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하루 20~30리 길을 걸어 남하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황 몬시뇰은 “90주년을 맞으며 무엇보다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공산군의 위협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평양교구 성직자들의 모습을 떠올린다”고 했다.

“1949년 5월 교구장 홍용호 주교님이 납치되신 후 6·25전쟁 직전까지 거의 모든 사제들이 체포당해 어디론가 끌려가셨습니다. 부친을 포함해서 본당 청년들은 신부님을 지키기 위해 사제관에서 교대로 숙직을 하기도 했고 낮에는 할머니들이 사제관을 지켰습니다.”

“남하할 수도 있었지만 ‘양이 있는데 목자가 피할 수 없다’는 홍용호 주교의 말씀에 따라 끝까지 신자들과 함께했던 사제들, 또 목자를 지키려 몸을 아끼지 않은 신자들은 현재까지 평양교구 신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아있다”고 말한 황 몬시뇰은 “시복작업은 평양교구의 역사와 저력을 되살리고 북한 선교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념사진전과 사진자료집 발간 등을 통해 교구 선배들의 열심했던 활동을 기억하고 또 이를 후배들에게 전하면서 ‘일어나 가자’라는 주제처럼 90주년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공산주의 몰락을 예고하셨던 파티마의 성모 발현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황 몬시뇰은 “이 땅에서도 성모님의 예언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말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평양교구는 ‘되살려야 할’ 침묵의 교회”라고 의미를 전한 황 몬시뇰은 “공산 치하에서 순교의 삶을 살고 있을 신자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신앙인들이 좀 더 관심과 기도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개인적으로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 보내주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출신 본당인 주교좌 관후리성당과 중강진성당을 위해 매일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통일이 되어 남북 신자들이 하나임을 느끼고 함께 신앙생활 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문의 010-2302-1009

이주연 miki@catimes.kr , 사진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