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장발장은행 설립 2주년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7-02-21 수정일 2017-02-22 발행일 2017-02-26 제 303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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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은행 2년, 429명 ‘희망을 대출 받다’
벌금 낼 돈 없어 징역 택하는 사회적 약자에 8억 지원
‘장발장법’ 통과에 큰 영향

‘43199’. 몇 푼 안 되는 벌금 낼 돈조차 마련할 길 없어 차가운 감옥행을 택해야 하는 가난한 이들 수.(2009년 기준) 가난도 서러운데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삶의 용기를 찾아준 ‘장발장은행’(은행장 홍세화)이 2월 25일로 설립 2주년을 맞았다.

은행이라고 번듯한 건물이나 북적이는 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시대 ‘장발장’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망을 전하는 일에는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았다. 관심과 사랑이면 충분했다.

2년 전 모습을 드러낸 그날처럼 2월 15일 저녁에도 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른두 번째 열린 대출심사 결과, 5명에게 920만 원을 대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장발장은행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난 이들이 429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전해진 돈은 현재까지 8억2118만7000원. 특별한 재원이 아니라 3979명의 개인, 기관, 본당 등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아 보내온 성금으로 맺어진 결실이라 더욱 놀랍다. 사랑이 기적을 낳았을까, 대출자 중에서 229명이 돈을 갚기 시작했고, 모두 1억8789만5000원을 갚았다. 자신에게 희망이 돼준 대출금 전액을 상환한 이도 59명에 이른다.

그간 장발장은행을 찾은 이들의 면면은 우리 사회가 지닌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벼운 기초질서를 위반한 이부터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른 이…. 대출 승인을 받은 사람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한부모가정, 장애인이 전체의 25% 정도를 차지한다. 지역도, 나이도, 국적도,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그만큼 가난으로 빚어지는 아픔의 그늘이 짙다는 뜻이다.

그동안 일궈온 사랑과 믿음이 밑거름이 됐을까, 적잖은 결실도 거뒀다. 지난 2015년 12월 국회가 일명 ‘장발장법’이라고 불리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500만 원 이하 소액의 벌금형에 대해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게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은행 고문은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은행장은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이 맡고 있다. 운영은 임용환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안규리(아기 예수의 데레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등 10여 명으로 이뤄진 운영위원회에서 맡는다. 대출심사는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광릉본당 주임), 인권연대 오창익(루카) 사무국장 등 7명으로 구성된 대출심사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장발장은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역설적이다. 바로 문을 닫는 것이다.

대출심사위원 오창익(루카) 국장은 “억울한 이유로 감옥에 가야 하는 이들이 사라지면 은행은 자연스레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며 “문 닫는 날이 오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장발장은행의 잔고는 7983만7351원. 하루빨리 잔고마저 털어내고 문 닫길 희망하는 이들의 바람이 오늘도 ‘장발장은행’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문의 02-749-9004, 후원 388-910009-34004 하나은행(예금주 장발장은행)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