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르는 경계
자르와 함께 알아두면 좋을 단어로 ‘제르’가 있다. 제르는 ‘둘레’, 또는 ‘테’라는 뜻인데, 특이하게도 탈출기에만 나오는 단어이고, 그것도 계약궤와 제사상과 제단을 만드는 장면에서만 나온다. 모세는 계약궤의 제르(테)에 금을 둘러 금테를 입히라고 명령했고(탈출 25,11; 37,2), 제사상의 제르(테)와(25,23-25; 30,3-4), 제단의 제르(테)에도 그렇게 하라고(30,3-4; 37,26) 명령했다. 이처럼 제르는 어떤 물건의 가장자리를 의미하고, 자르는 공동체의 외곽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니 발음도 의미도 서로 통하는 말이다.
■ 외래 문화를 소화하다
자르와 제르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외래어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고대근동 세계의 작은 나라였다. 대제국을 세워 주변 민족을 지배하거나 천하를 호령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히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 강대국의 간섭과 침략에 시달린 나라였다. 결국 나라를 잃고 유배를 간 적도 있다. 그런 약소국이기에 이스라엘은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이웃 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는 이처럼 외래어에서 온 낱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웃 문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유일무이한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이웃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위대한 종교의 요람으로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자르의 경계를 넘어서 보편적 사랑을 가르치셨다. 오늘 1독서의 말씀을 보자. 보편적 사랑을 위해서는 ‘동족의 잘못도 서슴없이 꾸짖으라’고 가르치신다. 오늘 복음도 일맥상통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고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해서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잘하는 것이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