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그때는 있었고 지금은 없는 것 (8) - 묵상

전삼용 신부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교구 영성관 관장)
입력일 2016-12-28 수정일 2016-12-28 발행일 2017-01-01 제 302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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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구청 들어와서 소공동체를 맡고 공부를 하다가 ‘복음나누기 7단계’의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사실 복음나누기 7단계는 교회 수도원 전통의 말씀묵상 기도방법이었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를 남아프리카 룸코(Lumko) 연구소에서 신자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만든 묵상과 나눔 방법입니다. 문제는 렉시오 디비나의 핵심인 묵상 부분이 복음나누기 7단계에서는 3분 정도로 매우 짧다는 데 있습니다.

복음을 읽으며 자신이 선택한 단어나 구절을 오랜 시간 동안 되뇌이고, 그 구절을 통해 주님께서 자신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들어야하는데 이 과정을 짧게 줄여놓았기 때문에 깊은 묵상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랜 묵상을 통해서 깨닫게 된 내용을 반원들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데 충분히 묵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나누기를 하다 보니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은 모임이 부담스러워지고, 묵상을 안 하고도 찻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교회 전통의 묵상기도는 ‘반추’기도라고도 불렸습니다. ‘반추’란 뜻은 초식동물들이 풀을 뜯는 동안에는 맹수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우선 빠르게 풀을 먹고 안전한 곳에서 다시 ‘되새김질’한다는 의미입니다. 먹는 데는 몇 분도 안 걸리지만 되새김질은 몇 시간씩 걸립니다. 따라서 묵상은 한 단어를 가지고도 되새김질 하는 시간이 며칠, 혹은 몇 년이 소요될 수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아마도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어렸을 때부터 왠지 모르는 마음의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수녀원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만나면 그 공허함이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녀가 되고서도 그 텅 빈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수녀원 복도를 걸어가다가 그리스도께서 채찍을 맞으시는 성화를 보게 됐습니다. 사실 그 그림은 복도를 지날 때마다 수 천 번은 더 본 것이었으나 그날 그 순간만은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매 맞으시는 그런 고통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를 묵상을 통한 ‘말씀의 육화’라고 합니다.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응답했기에, ‘말씀이 그 태중에서 사람이 되신 것’과 같습니다. 비로소 그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 수녀님은 바닥에 엎드려 한없는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녀님이 그리스도의 수난 그림을 매우 오래 보아온 끝에 그것이 누적됐고 결국 100도에서 물이 끓듯이 때가 차서, 주님이 말씀이 수녀님을 사로잡게 됐습니다. 우리 또한 한 묵상을 할 때 말씀이 내 마음 안에 온전히 육화될 때까지 묵상을 놓지 말아야합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위해 열 달을 엄마 뱃속에서 살아야하는 것처럼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도 그 묵상시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코 육화된 말씀의 신비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의 체험이 약해지면 저절로 성체에 대한 신심도 약해지게 돼서 미사 때 성체를 영해도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슴이 뜨거울 때까지 성경말씀을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야만 부활하신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그들에게 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충만해진 상태에서야 비로소 빵을 떼어주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다(thank)’란 단어는 ‘생각하다(think)’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기도가 되면 ‘묵상’이 됩니다. 모든 묵상은 참다운 감사로 마무리돼야 합니다. 성체에도 감사(Eucaristia)란 뜻이 있습니다. 반복하지만 참다운 묵상이 죽으면 성체에 대한 신심도 죽습니다. 성체가 죽으면 교회도 죽습니다. 성체를 영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묵상기도의 부활이 절실합니다.

전삼용 신부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교구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