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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나를 팔아라”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이연세(요셉) 대령
입력일 2016-12-06 수정일 2016-12-07 발행일 2016-12-11 제 302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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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이 말씀을 접할 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아릿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아버지는 2남5녀의 작은아들로 태어나 고향에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아버지 같은 형님 밑에서 어렵게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년을 건너뛸 정도로 영민하고 공부도 잘했지만 가정 형편상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당신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들이 중학교에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 부러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 후, 형님 밑에서 농사를 도우며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6·25전쟁이 발발하기 3년 전인 1947년 18살 약관의 나이에 어머니와 백년가약을 맺고 가장이 됐습니다. 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후, 형님에게서 약간의 논밭과 집을 물려받아 분가를 했지만, 2남4녀의 양식조차 댈 수 없는 가난한 농사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염전에서 일하고 새벽과 저녁 그리고 쉬는 날에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종종 폭음도 했습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암담한 현실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 날이면 항상 자식들을 불러 놓고는 “인사 잘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절약해야 살 수 있다”라면서 매번 똑같은 얘기를 술이 깰 때까지 반복했습니다.

어릴 때는 “도대체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왜 저러시는 거야”라고 짜증을 냈었습니다. 지금이야 열심히 일한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살지만, 그 당시에는 어린 자식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내 몸을 팔아라. 어디 아무도 없는 산골에 가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곤 했습니다.

중년이 돼서야 아버지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도 세상살이가 힘겹고 어려울 때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께는 2남4녀의 장남이자 한 여인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부대에서의 직책, 기타 부수적인 일들로 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처럼 폭음을 하거나 아들딸을 앉혀 놓고 일장연설을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믿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항상 제 뒤에서 늘 함께하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십니다.

저는 업무가 힘에 부치고 삶이 고통스러울 때면 지갑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구약성경의 시편 한 구절을 꺼내 봅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시편 23,4)

아멘!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이연세(요셉) 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