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등대

이연세(요셉) 대령(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6-11-22 수정일 2016-11-23 발행일 2016-11-27 제 3021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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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화창한 어느 가을날, 우리 부대는 해상비행 훈련의 일환으로 서해 바다를 비행했습니다. 얼마를 비행했을까. 처음에는 점처럼 작게 보였던 섬이 점차로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서해안 최끝단에 자리 잡은 섬! 격렬비열도였습니다. 우리는 격렬비열도를 공중에서 한 바퀴 선회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고, 단풍이 곱게 든 섬은 마치 바다에 꽃송이를 뭉쳐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섬의 서편 끝에 외로이 서 있는 하얀 등대의 아름다움은 처연하기까지 했습니다.

석양을 받으며 외롭게 서 있는 등대를 바라보며 ‘왜 등대는 저기에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했습니다. 등대는 칠흑 같은 밤,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의 길잡이가 돼 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만약 등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밤이나 안개가 자욱한 날, 배가 방향을 잃고 좌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느끼는 군대는 어쩌면 인생에서 칠흑 같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했기 때문에 보람과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병사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도 자유롭게 만날 수 없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한을 받으며,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병사들이 겪게 되는 그 갑갑함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유가 없는 환경 때문에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절망합니다. 그래서 일부 절망에 빠진 병사들은 군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영을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을 겪게 되고 간혹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병사들까지 발생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인생의 밤바다를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등대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인생길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인생의 등대’가 필요합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만일 괴로울 때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어딘가에 반드시 신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인식하기만 하면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사랑과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의지해야 할 등대가 신앙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게 등대는 항해의 방향을 알려주는 등불이지만, 인생의 깜깜한 밤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의 등대는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5)라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곧 마음의 등대를 간직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인생의 밤을 밝혀줄 ‘마음의 등대’를 환하게 밝히기를 권합니다.

이연세(요셉) 대령(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