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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성월 특집] 기고 / 상장례에서 생기는 심각한 문제들

박명진(시몬)rn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사와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고 가톨릭교리신학원 편수부 편
입력일 2016-11-08 수정일 2016-11-09 발행일 2016-11-13 제 301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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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가르침 벗어난 장례문화 “올바른 교육으로 바로잡아야”

천주교회의 상장례는 죽음의 고통을 달래는 일시적 위안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상장례를 통해 고인이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한다.

유족은 부활과 영원한 만남에 대한 희망으로 사별의 아픔을 이겨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속에서 여생을 기쁘고 보람되게 살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천주교회의 상장례는 죽음의 예식이 아니라 참된 삶을 드러내는 희망의 예식인 것이다. 신자들 가운데는 교회 가르침과 어긋나는 상장 습속을 교회의 상장례와 혼동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상장례에서 생기는 심각한 문제 몇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텬쥬셩교례규」의 내용은 오늘날의 어법으로 바꾸었다.)

■ 시신은 장애인인가?

「상장 예식」에 있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은 있어도 보지를 못하옵고 귀는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는 있어도 내를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를 못하며 그 목구멍은 소리 내지 못하나이다.”에서 가리키는 존재를 시신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시신을 “장애란 장애는 모두 다 지니고 있는,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 죽은 사람보다 더 보잘것없는 사람은 없다.”(수도권지역 한 본당의 위령성월 특강 교재)라고 가르치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 시편에 나타나는 존재가 우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112항) 초대 교회는 교우의 죽음이 세상 순례를 마치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희망적이고 기쁜 순간이므로 ‘천상 탄일’(Dies natalis)이라고 불렀다. 또 시신이 “살았을 때 세례의 은총으로 영혼의 죄를 씻고 닦고, 견진과 병자성사를 받을 때 성유의 신기하고 영묘한 힘으로 하느님께 속한 존재가 되고, 성체를 영할 때 축성되어 예수님의 지체가 되고, 성령의 궁전이 되어 살아 있을 때는 모든 착한 행위를 행하고, 종말에는 부활의 영광을 얻어 영혼과 함께 영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존재이므로 이를 귀중하게 여기는 큰 이유”(「텬쥬셩교례규」 상례문답)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시신을 장애를 지닌 불쌍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하는 것은 교회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 “내 동생 날(日) 잡았다”

어머니 선종 소식을 한 지인에게 전했을 때 “내 동생 날 잡았다”는 대답을 듣고 아연했던 적이 있다. 나중에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동생 날 잡았다”고 말한 그는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외교인은 택일(擇日)과 관계된 습속 때문에 혼인, 제사, 이사 등이 정해지면 상가에 가지 않는데 “날짜의 길흉을 따져 지키지 못하며 일부러 그런 날짜를 가릴 것도 없고 피할 것도 없다”(「회장 직분」)는 가르침처럼 천주교 신자라면 택일이 함의(含意)하는 복을 얻기 위해서나 부정 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상가 방문을 기피하면 안 된다.

신앙의 선조들은 환자 방문과 상가 봉사를 대단히 중요시했다. “성교회에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본받아 사람의 영혼을 흉악하고 음험한 데에서 구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교우가 병들어 위태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집에서 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흔쾌히 가서 보고 좋은 말로 알아듣도록 격려하여 선종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 죽을 때까지 그냥 버려두지 말라”(「텬쥬셩교례규」 선종을 돕는 공부)고 한 것처럼 운명하기 전부터 적극 방문했다.

오늘날도 “신자 공동체는 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 신비체의 사랑 안에서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유족을 위로하며 상사(喪事)를 정성껏 돌봐줌으로써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문상은 고인을 위해 기도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함뿐 아니라 조객에게도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도록 하는 기회가 된다. 따라서 신자 공동체는 상을 당하면 문상할 것”(「200주년 사목회의 전례 의안」 147항과 153항 발췌 정리)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 위령기도의 박자와 강약은 상엿소리에서?

「상장 예식」의 악보에는 박자가 표시돼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인터넷에 “연도 노래의 박자와 강약이 상여꾼들이 발을 내딛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는 자료도 있고, 연대 미상의 어떤 교구 상장례 교재에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가는 발 박자처럼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라는 설명도 있으며, 상엿소리(輓歌)를 위령기도 가락의 기원으로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위령기도를 꼭 노래로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찌 구태여 소리 높이 노래하여 바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노래를 하는 소리는 더욱 내 생각을 들어 주님께 향하게 하고 더욱 흩어져 있는 내 마음을 모아 정리하게 하고 더욱 우리 마음으로 바라는 큰 바람을 드러내기 때문”(「텬쥬셩교례규」 상례문답)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능하면 노래(唱誦)로 바쳤다. 그런데 상장례 가운데 유독 행상(운구)에서는 외교인들의 상엿소리가 아닌 시편 50편을 비롯한 교회 기도문을 ‘노래가 아닌’ 큰 소리로 외우라(朗誦)고 규정하고(「텬쥬셩교례규」 상장규구와 상례문답),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를 보면 신앙의 선조들이 실제로 이 규정을 준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박해 뒤에도 교회 정신에 어긋나는 상장 습속은 단호히 배척됐다. “만가(輓歌, 상엿소리)라 하는 것은 거기 기록한 덕담과 찬사에 이단의 말이 많으니 망자더러 ‘화하여 신선이 될지어다’, ‘화하여 부처가 되어지이다’, ‘극락세계로 갈지어다’, ‘황천객’이라 하는 그런 것이니 교우 장례에는 온전히 성교회법대로만 하라”(경향잡지 1921년 3월호)고 한 것이다.

구체적인 기준이나 조건이 제시되지 않은 ‘상여꾼들이 발을 내딛는 속도’나 ‘상여를 메고 가는 발 박자처럼’ 같은 말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상엿소리를 부르고 가든 기도문을 큰 소리로 외고 가든 상여를 메고 갈 때는 상황에 따라 빨리 걷거나 천천히 걷기도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박자를 맞추어야 하고, 길의 상태에 따라 내딛는 발자국의 강도가 각기 다른데 평탄한 길에서 내딛을 때 강도는 기도문 가운데 어떤 부분에 맞추고, 오르막길에서 내딛을 때 강도는 어떤 부분에 맞추어야 하나?

■ 천주교 신자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

“입관 후에는 새로운 제물로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어떤 본당 연령회장이 상주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사는 전(奠, 장례 전에 영좌 앞에 술과 과일을 차려놓는 일)으로 이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습(襲,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힌 다음에 염포로 묶는 것)을 한 뒤에 제물을 올린다”는 규정일 뿐 교회 가르침은 아니다. 또한 다음 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천주교에서는 제사 지낼 수 있지요?”, “예,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교회는 「상장 예식」 제3판(2013년)에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수록했다. 그러나 교회가 허락한 제례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의식이다. 특히 다종교 가정에서 성장한 성인 천주교 신자 가운데는 오랫동안 제례를 지내온 경우가 많아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차원에서 허용하지만, 신자 가정에서 의무적으로 제례를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지침」은 조상을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는 가정의 제례보다 우선해 위령미사를 봉헌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앙의 선조들은 교회가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제사보다 위령기도를 정성껏 바치는 것이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훨씬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奠)이나 제사는 반대하거나 권유할 것도 아니고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 행위를 하지 않는 한 필요 이상 간섭할 것도 아니다.

■ 어째서 이런 일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밖의 상장 습속을 엄격한 잣대로 제한했으므로 교회 가르침대로 상장례를 치렀다.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암기시킨 다음에 이해를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고 나서 세례를 베풀었으며, 세례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주요 교리에 대한 이해를 판별했다. 또한 교우들은 생활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으므로 상장례에 대한 교리도 회장들이나 교우 어른들로부터 실생활을 통해 배웠다. 그러니 교회 가르침과 어긋나는 상장 습속이 들어올 수 없었다.

오늘날 이런 전통이 많이 약해졌다. “참되고 올바른 전례 정신에 부합하기만 하면 때때로 전례 자체에 받아들인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면서 “민족들의 풍습에서 미신이나 오류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면”(전례헌장 37항)이라는 전제 조건을 등한시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1970년대 이후 신자들이 급증하면서 실생활의 문제를 복음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교육이 매우 부족해진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로 들 수 있다. 결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보다 교육을 강화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묘지에서의 하관예절. 가톨릭에서는 시신을 불쌍하거나 보잘것없는 존재로 가르치지 않는다. 박명진 제공

1961년 2월 청주교구 옥천본당 이원공소 장례예식에서 발인모습. 박명진 제공

천주교 장례예식에서 시신을 묘지로 운구하는 모습. 위령기도의 박자와 강약이 상엿소리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박명진 제공

「텬주셩교례규」 1864년 초간본. 연도(위령기도)를 포함해 현재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장례예절서인 「상장 예식」의 뿌리가 되는 예식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천주교 장례예식 중 고별예식 모습. 제사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권유하거나 반대할 일이 아니다. 박명진 제공

박명진(시몬)rn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사와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고 가톨릭교리신학원 편수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