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43) J.R.R. 톨킨 5)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
입력일 2016-11-08 수정일 2016-11-09 발행일 2016-11-13 제 3019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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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따뜻한 정서…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돼
■ 톨킨의 세계

생생한 인물 묘사와 함께 웅장한 서사적 규모, 구조를 지닌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빠져든 독자는 또한 그 이야기에 걸맞은 총체적인 세계관과 깊이 있는 인간관을 만나며 감탄하게 됩니다. 이 작품이 흥미진진한 판타지를 넘어서 진정 위대한 이야기로 평가받는 결정적인 이유이지요. 우리가 ‘반지의 제왕’에 나타난 톨킨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본 사상을 이해하려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장대한 이야기가 결코 ‘영웅숭배’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에 뿌리박고 있는 작고 소박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일상에서 오는 기쁨과 슬픔, 노고와 보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의 작은 즐거움들을 향유할 줄 알며, 또한 난관이 있으면 극복하려 애쓰며 최선을 다해 선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갑니다. 그리고 톨킨은 이러한 ‘작은 이들’은 세상과 공동체를 위해 악과 맞서 싸우고 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분연히 용기와 고귀한 희생으로써 행동할 수 있는,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하는 주체이자 진정한 영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톨킨은 이러한 목숨까지 거는 순수한 용기와 고귀한 희생은 어떤 거대한 명분이나 이데올로기, 정치적 야심, 명예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가족과 벗과 이웃에 대한 깊은 우정과 사랑에서 오는 것임을 특히 ‘작은 이들’인 호빗 족들을 통해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톨킨은 젊은 시절부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문학을 연구한 학자였고 교수였으며, 후에는 북유럽 신화와 언어에 있어 독보적인 전문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신화를 창조하고, 그 신화를 위한 언어를 고안하는 즐거움을 소년 시절부터 즐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학문적 연구 과제였던 북유럽의 신화와 언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스스로 자신의 문학작품 속에서 고유한 신화와 언어를 창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호빗’이라는, ‘톨킨의 세계’라는 거대한 대지에 자리 잡고 자라난 나무이자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신화에 나오는 여러 요정들이나 종족들을 위한 역사와 언어가 치밀한 체계를 갖추도록 각고의 노력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반지의 제왕’에 매혹된 많은 독자들이 톨킨의 신화 세계의 전모를 알기 위해서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전사이자 ‘원역사’를 이루는 신화(Saga)이자 ‘반지의 제왕’ 훨씬 이전에 이미 구상되고 단편적으로 기술되었지만 톨킨 사후에 비로소 출간된 ‘실마릴리온’(Silmarillion)과 ‘후린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Hurin)을 읽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지요. 이에 더하여 톨킨 사후에 많은 편집자들의 노력으로 그의 유고로부터 ‘반지의 제왕’의 시간적, 공간적 무대가 되는 ‘가운데 땅’과 관련된 신화들이 열두 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가운데 땅의 역사’(The History of Middle- Earth)로 묶여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톨킨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정서와 관심사보다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았던 현학적이고 고답적이며 천재적인 학자이자 작가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따듯한 인간애와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가 가득합니다. 이것은 그의 세계관을 결정지은 것이 사실은 언어와 신화와 학문의 세계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체험한 가족과 벗과 지인들과의 사랑과 우정들 때문일 것입니다.

톨킨과 그의 아내 에디스.

■ 톨킨의 사랑, 우정, 가족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읜 톨킨과 동생은 그의 어머니가 선종하면서 후견인으로 지정한 프랜시스 자비에르 모건 신부로부터 큰 영향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인품과 확고한 신앙을 지닌 오라토리오회 소속의 프랜시스 신부의 존재는 어머니를 잃은 큰 슬픔을 딛고 톨킨 형제가 잘 성장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프랜시스 신부는 관대하고 자상하면서도 규율 있는 모습으로 형제들에게 신앙과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아가 된 후 친척들의 냉담한 반응에 처했던 톨킨 형제에게 사비를 들여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톨킨은 인생을 통해 프랜시스 신부를 깊이 존경하였고, 그의 사랑과 도움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톨킨이 프랜시스 신부와 심각한 의견 차이를 보였고,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게 된 유일한 일은 열여섯 나이에, 세 살 연상이었던 에디스 브랫과 사랑에 빠지고 교제하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후에 여러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프랜시스 신부는 톨킨에게 엄격하게 그 교제를 끊으라고 말하였고,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화해합니다. 프랜시스 신부가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한 이유는 옥스퍼드 대학 준비 중이던 톨킨의 장래를 걱정한 것과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에디스가 톨킨의 신앙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프랜시스 신부의 태도는 톨킨에게 큰 아픔이었지만, 그것이 프랜시스 신부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거두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에 톨킨은 아들 마이클에게 쓴 편지에서 아내 에디스가 겪은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하면서도 프랜시스 신부에 대해서 “진짜 아버지 이상의 아버지와 같은 후견인이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톨킨은 십 대 시절 이미 사랑에 빠졌고, 여러 어려운 시기를 거쳐 마침내 결혼에 이른 아내 에디스에게 평생 충실했습니다. 비록 에디스가 톨킨의 깊은 가톨릭 신앙을 진심으로 공유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주로 옥스퍼드의 고전학자들과 영문학자들, 작가들로 이루어진 톨킨의 벗들에게 이질감과 일종의 질투심 같은 속앓이를 겪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에디스와의 깊은 부부애는 톨킨에게 있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톨킨이 평생 해로한 배우자와의 관계가 그저 인생을 동반한 것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한 더없이 소중한 관계였다는 것은 에디스가 죽은 후 작품을 통해 더없이 아름다운 연인인 베렌과 루디엔에 비유함으로써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톨킨의 삶과 작품세계에 있어 또한 중요한 존재들은 바로 톨킨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톨킨은 가톨릭 사제였던 큰 아들 존과 그의 유고집 편집인이었던 셋째 아들 크리스토퍼를 포함 네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거의 이십 년에 걸쳐 그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보냈던 유머와 상상력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할아버지의 편지들’(Letters from Father Christmas)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 ‘호빗’의 탄생이 자녀들에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왔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