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톨킨의 사랑, 우정, 가족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읜 톨킨과 동생은 그의 어머니가 선종하면서 후견인으로 지정한 프랜시스 자비에르 모건 신부로부터 큰 영향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인품과 확고한 신앙을 지닌 오라토리오회 소속의 프랜시스 신부의 존재는 어머니를 잃은 큰 슬픔을 딛고 톨킨 형제가 잘 성장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프랜시스 신부는 관대하고 자상하면서도 규율 있는 모습으로 형제들에게 신앙과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아가 된 후 친척들의 냉담한 반응에 처했던 톨킨 형제에게 사비를 들여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톨킨은 인생을 통해 프랜시스 신부를 깊이 존경하였고, 그의 사랑과 도움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톨킨이 프랜시스 신부와 심각한 의견 차이를 보였고,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게 된 유일한 일은 열여섯 나이에, 세 살 연상이었던 에디스 브랫과 사랑에 빠지고 교제하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후에 여러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지만 프랜시스 신부는 톨킨에게 엄격하게 그 교제를 끊으라고 말하였고,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화해합니다. 프랜시스 신부가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한 이유는 옥스퍼드 대학 준비 중이던 톨킨의 장래를 걱정한 것과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에디스가 톨킨의 신앙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프랜시스 신부의 태도는 톨킨에게 큰 아픔이었지만, 그것이 프랜시스 신부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거두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에 톨킨은 아들 마이클에게 쓴 편지에서 아내 에디스가 겪은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하면서도 프랜시스 신부에 대해서 “진짜 아버지 이상의 아버지와 같은 후견인이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톨킨은 십 대 시절 이미 사랑에 빠졌고, 여러 어려운 시기를 거쳐 마침내 결혼에 이른 아내 에디스에게 평생 충실했습니다. 비록 에디스가 톨킨의 깊은 가톨릭 신앙을 진심으로 공유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주로 옥스퍼드의 고전학자들과 영문학자들, 작가들로 이루어진 톨킨의 벗들에게 이질감과 일종의 질투심 같은 속앓이를 겪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에디스와의 깊은 부부애는 톨킨에게 있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톨킨이 평생 해로한 배우자와의 관계가 그저 인생을 동반한 것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한 더없이 소중한 관계였다는 것은 에디스가 죽은 후 작품을 통해 더없이 아름다운 연인인 베렌과 루디엔에 비유함으로써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톨킨의 삶과 작품세계에 있어 또한 중요한 존재들은 바로 톨킨의 자녀들이었습니다. 톨킨은 가톨릭 사제였던 큰 아들 존과 그의 유고집 편집인이었던 셋째 아들 크리스토퍼를 포함 네 남매를 두었는데, 자녀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거의 이십 년에 걸쳐 그들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보냈던 유머와 상상력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할아버지의 편지들’(Letters from Father Christmas)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 ‘호빗’의 탄생이 자녀들에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왔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