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교구 이곳저곳] (16) 용인본당 공원묘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11-08 수정일 2016-11-09 발행일 2016-11-13 제 301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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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 부활의 희망 되새기는 거룩한 땅 
예로부터 교회에선 ‘묘지’ 마련하여 죽은 이들 안장
교구에선 ‘안성추모공원’ 조성… 신자들에게 제공
용인 등 오래된 본당에선 자체적으로 운영하기도

교회 묘지는 성당, 경당, 성지(순례지), 제대와 함께 교회가 정한 거룩한 장소다. 용인본당 공원묘원 전경.

19세기 말 네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답사한 영국의 작가이자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우리나라를 ‘무덤의 나라’라 했다. 가난으로 평생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살던 사람도 죽은 후에는 양지바른 곳에 묻히는 나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죽은 이의 공간인 무덤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무덤은 죽은 이들이 부활을 기다리는 곳이자, 살아있는 신자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통공(通功)과 부활의 희망을 되새기는 신성한 곳이다. 11월 위령성월을 맞아 용인대리구 용인본당의 공원묘원을 찾았다.

용인대리구 용인성당에서 서쪽으로 3km가량 떨어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의 산자락. 용인본당 신자들이 부활을 기다리는 공간인 ‘용인본당 공원묘원’이다.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십자가가 보였다. 과연 교회의 땅이라는 느낌이다. 성당 바로 곁에 교회 묘지를 두고 있는 외국의 경우, 곁에 성당이 있기에 거룩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이곳은 산비탈을 따라 늘어선 무덤들과 십자가가 새겨진 묘비, 높은 곳에 자리한 십자가와 성모상, 성요셉상 등이 엄숙하고 거룩한 느낌을 줬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묘문화와 교회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느낌이다.

예로부터 교회는 교회 묘지를 두고 죽은 신자들을 교회 묘지에 안장해왔다. 신자들이 거룩한 땅에 묻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지금은 교구가 안성추모공원을 통해 교구차원에서 신자들의 묘지를 마련했지만, 용인본당을 비롯한 오래된 본당 중에는 본당의 묘지를 마련해둔 곳도 있다.

시편의 기도와 십자가가 새겨진 한 신자의 묘비.

거룩한 땅. 교회 묘지에 참으로 어울리는 말이다. 교회법은 ‘거룩한 장소’를 설명하면서 성당, 경당, 성지(순례지), 제대와 함께 교회 묘지를 꼽고 있다. 교회는 축복된 교회 묘지나 자리를 마련하고 죽은 신자들이 묻힐 수 있도록 한다. 또 묘지의 거룩한 성격을 보호하고 촉진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교회법 1240-1243조)

우리나라의 정서상 죽은 이들이 묻힌 묘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한 공간이다. 그래서 삶의 자리와 구분해 이런 산 속에 묘지를 조성한다. 하지만 용인본당의 묘지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희망이 느껴졌다.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묘지를 방문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많은 이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고 찾아온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무덤의 화병과 화분에는 아침에 두고 간 듯 싱싱한 꽃이 놓여있었고, 어떤 무덤 앞에는 주변 산에서 모아온 것으로 보이는 밤이 소복이 쌓여있기도 했다. 어쩐지 무덤의 주인과 밤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같은 풍경이다. 죽음과 삶이 신자들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믿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교회 묘지는 죽은 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죽은 이들을 위해, 특히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친다. 또한 하느님나라에 든 성인들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신경에서 고백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다. 교회 묘지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는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단단히 할 수 있다. 그래서 위령성월 중 1~8일 사이에는 특별히 묘지를 찾아 전대사조건을 이행하면 연옥영혼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묘지를 거닐며 나지막이 위령기도를 바치던 중, 어느 묘지에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이곳은 죽은 신자가 쉬는 곳이자 산 신자가 공원을 찾듯 쉬어가는 곳이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