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성남대리구 상대원본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08-30 수정일 2016-08-31 발행일 2016-09-04 제 301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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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원 공업단지 근로자 미사 봉헌하며 청년 레지오 활성화
수원교구·성골롬반외방선교회 협력으로 1979년 성당 건립
지역주민 영육 건강 위한 미사봉헌과 기도회로 신뢰 얻어
사회복지분과, 종교 상관없이 소외계층 돌봄에 적극 나서

상대원성당 전경.

수원교구 성남대리구 상대원본당(주임 이정철 신부)은 지역 주민들에게 신앙을 전하면서,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더불어 지내온 공동체다.

상대원본당 역시 성남 지역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1969년 서울에서 강제 이주된 주민들이 지금의 성남인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머물게 되면서 ‘광주대단지’를 형성했다. 이곳에 1971년 수진동본당이 설립되면서 남한산성 동남쪽 계곡에 위치한 상대원리의 신자들도 3㎞에 이르는 거리를 걸어 미사에 참례했다.

수진동본당 설립 당시에는 상대원의 신자 수가 10여 세대 정도로 적었지만, 1976년 단대동본당이 설립될 당시에는 600여 명으로 성장했다.

2010년 열린 상대원본당 청년 예술제.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상대원본당 설립 계획은 1977년 단대동본당 신축성당 봉헌식에서 시작됐다. 당시 박인환(베드로) 본당 총회장이 교구장이었던 고 김남수 주교에게 상대원본당 신설을 건의한 것이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성당부지 마련은 교구가, 성당건축은 단대동본당을 사목하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가 돕기로 했다. 이는 비단 상대원 신자뿐 아니라 가난과 소외감 속에 살아가는 성남시의 모든 신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격려였다.

마침내 교구와 성골롬반회의 도움으로 1979년 성당 건축이 시작됐고, 그해 6월 30일 상대원본당이 신설됐다.

본당 설립 당시 상대원 지역민들은 대부분 가난한 생활 형편을 이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당굿이나 온갖 잡신을 쫓는 행위가 무분별하게 유행해 가난에 더욱 하중을 주는 상황과 마주해 있었다. 본당은 지역 주민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고, 가난으로 받는 고통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해왔다.

본당은 지속적인 성령쇄신 세미나와 기도회를 열고, 매주 병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지역 주민이 영육 간에 건강하기를 기도했다. 신자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에 지역 주민들이 감화를 받기도 했다.

초대 주임인 성골롬반회 조 파트리치오 신부는 평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본당 구역의 가정을 두루 방문하면서, 가난한 환자의 요 밑에 몰래 치료비에 보태 쓸 돈을 두고 오는 등 자상하게 가난한 이들을 챙기는 사목을 펼쳤다.

초대 주임신부 이후에도 본당은 꾸준히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웃을 위해 노력해왔다.

2013년 봉사자 월례교육 뒤 참가자 기념 촬영. 상대원본당 제공

본당은 전국 각지에서 상대원의 공업단지를 찾는 많은 근로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청년레지오를 활성화 시켰다. 또 본당 관할 구역 내에 툿찡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가 운영하는 ‘만남의 집’과 연대해 근로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사회복지분과를 중심으로 불우이웃을 돕고 극빈 환자의 치료를 주선하는 등 소외계층을 위한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다. 구역 내 노인을 초청해 해마다 경로잔치를 열고, 비신자 주민들을 초청해 위안잔치를 열기도 했다.

본당의 다양한 사목으로 설립 당시 1031명이었던 신자 수는 해마다 증가해 1990년대에는 3000명을 넘어섰다. 인근에 본당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신자 수가 다소 감소했지만, 본당은 2000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복음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