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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나눔포럼 특집] 어떤 내용 논의됐나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6-08-24 수정일 2016-08-24 발행일 2016-08-28 제 300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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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무기 내려놓고 대화할 때 가능… 종교 뛰어넘는 연대 필요”

2016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일정 중 8월 20일 마련된 제3회의에서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한반도 평화현실 진단과 해법’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회자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 조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박건영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왕이저우 중국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앤드류 여 미국 가톨릭대학교 아시아학 소장(왼쪽부터).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 부설 평화나눔연구소(소장 임강택) 주관으로 8월 19~20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열린 2016 한반도평화나눔포럼에는 분쟁을 경험한 국가의 고위 성직자들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해법과 교회의 역할을 논의했다.

‘평화의 길, 한반도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포럼은 8월 19일 오후 5시 성신교정 대성당에서 열린 전야제와 20일 성신교정 진리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3회의에 걸친 발표로 구성됐다.

전야제에서는 ‘분쟁에서 평화로: 국제평화를 위한 현장의 목소리’ 사례발표가 마련돼 ‘에코피스 암만’ 문께스 메이아르 대표와 ‘산 에지디오 공동체’ 마르코 프란치오니 아시아 담당관, 슬로베니아 루블랴나대교구 안톤 얌닉 보좌주교가 발언자로 나왔다.

마르코 프란치오니 담당관은 국제사회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견지에서 북한에 의약품과 식량을 지원한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지원이 본래 목적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확인한 결과 의약품과 식량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며 “평화 만들기는 무엇보다 서로 얼굴을 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얌닉 주교는 DMZ 국제청년평화순례에 국내외 청년들과 동행한 체험에 대해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 청년들과 분단의 현장을 걸으며 어떻게 하면 분쟁과 갈등이 있는 곳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번 2016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의 핵심을 이루는 20일에는 먼저 제1회의 ‘국제적 평화 달성을 위한 가톨릭의 역할’에서 분쟁지역 고위 성직자들로부터 민족, 종교 분쟁을 극복한 영성을 들었다. 제2회의 ‘분쟁 해결과 평화 구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서는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최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 등 세계 평화 정착에 기여한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짚었다. 마지막 제3회의 ‘한반도 평화현실 진단과 해법’은 제1회의와 제2회의에서 이뤄진 논의를 바탕으로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확산되는 사드 배치 문제 등 구체적 사안을 놓고 남북한이 갈등과 군사적 대결을 극복하고 평화 공존의 길로 나아갈 방안을 찾았다.

포럼 발표에 앞서 기조연설을 맡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한반도에 군비경쟁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교회는 평화가 무기에 의한 힘의 균형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다”며 “지상의 평화를 가져오려면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종교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대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8월 20일 포럼 발표자와 관계자들이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제1회의 ‘국제적 평화 달성을 위한 가톨릭의 역할’

분쟁지역 재건 앞장선 교회 노력 소개

교육과 자선활동으로 평화 기반 마련

“세상을 화해로 이끌 평신도 노력 필요”

레바논 출신 벱싸라 부트로스 라이 추기경(중동 및 안티오키아 마로나이트교회 수장, 총대주교)은 “레바논은 고통스러운 내전(1975~1989)에서 파괴와 수많은 인명피해, 분열을 겪었지만 결국 평화와 화해에 대한 좋은 경험을 했다”며 “이웃 아랍국가들의 도움으로 1989년 그 유명한 ‘타이프 협정’과 ‘국민화해헌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평화를 가져오려면 그 나라의 노력은 물론 국제사회의 연대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라이 추기경은 근본적으로 레바논은 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라기보다 다른 중동 국가와는 달리 국가로부터 종교를 분리하고 그리스도인과 이슬람인의 상생을 고려한 1943년의 조약에 근거해 건국됐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어 “레바논의 공존공생 형태는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전쟁을 해결하는 데 훌륭한 모범이 된다”고 밝힌 라이 추기경은 “평화와 화해는 문화의 본질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명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든 화해를 위해 활동하고 평화를 증진하라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빙코 풀리치 추기경(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대교구장)은 “1990년대 초반 전쟁을 체험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람으로서 전쟁 중 개인적인 경험과 전쟁 후의 평화 재건을 위한 교회의 노력을 나누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교회는 전쟁 종식 후 ▲교육활동 ▲자선활동 ▲본당 공동체 건물 복구작업 ▲교회 재산 회복을 향한 혁신 ▲가톨릭 언론 설립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소개했다.

풀리치 추기경 발표 내용에 따르면 교육활동은 전쟁이 종식되고 첫 번째 화해 과정으로 특히 젊은 세대 교육에 중점을 뒀다. ‘유럽을 위한 학교들’이라 이름 붙인 가톨릭계 학교들은 비록 정부의 인준을 받지는 못해 강력한 제재를 견뎌내야 하는 처지지만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교위원회 산하에는 카리타스가 만들어졌고 모든 교구에는 교구 카리타스가 만들어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체를 대표하는 카리타스와 협력체계를 이룬다. 카리타스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돌보면서 노숙인 급식소도 운영하며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풀리치 추기경은 “전쟁으로 파괴돼 아무것도 없는 본당 관할 구역에 사제를 파견해 본당 공동체를 다시 건설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며 “무너진 본당을 재건한 사제들의 용기는 감탄할 지경이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공산주의 체제에서 빼앗긴 교회 소유 재산을 돌려받아 미래의 사제들을 위한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으며 여론 조성과 신자들 사이의 연결망 보존을 도모하는 가톨릭 언론도 새롭게 변모시키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에 풀리치 추기경과 함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참여한 프란요 코마리챠 주교(반야루카교구장) 역시 “가톨릭 신자로서 인간 존엄성을 위해 일하는 내외국 신자들과 공유해야 하는 과제는 분명하다”며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안전과 재건을 지지해 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마지막 발표를 맡은 스타니슬라브 호체바르 대주교(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교구장)는 전쟁과 테러 상황 속에서 교회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평화와 화해를 실현하기 위한 평신도들의 임무를 언급했다. 호체바르 대주교는 “산상설교 가운데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는 가르침처럼 하느님은 마음에만 현존한다”며 “가톨릭교회는 엄격한 교리나 기계적인 윤리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가 놀랍도록 사랑받고 있는 기쁨을 발견하도록 돕는 종교”라고 말했다. 평신도들은 선하고 영감을 주는 관계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미 평화의 세상, 화해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그는 “참된 평화는 보편적 평화”라는 말로 누구라도 혼자 힘으로는 보편적인 것을 만들 수 없듯 평화도 세계적인 차원에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중적인 관계를 거쳐 만들어진다”고 제시했다.

■ 제2회의 ‘분쟁 해결과 평화 구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히로시마 찾은 오바마 대통령 사례서

평화로 인도하는 화해의 중요성 강조

첫 발표자 박정우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는 「간추린 사회교리」를 중심으로 가톨릭교회의 평화론을 전개했다. 박 신부는 “「간추린 사회교리」는 그리스도교 전통과 여러 문헌에서 서술된 평화 개념을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의 이성적, 도덕적 질서 위에 세워진 가치이자 보편적 의무라고 규정한다”며 “단순히 전쟁의 부재나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가 아니다”고 정리했다.

박 신부는 가톨릭교회 문헌 중 성 요한 23세 교황이 1963년 발표한 「지상의 평화」가 세계 평화에 던져주는 중요한 의미를 짚고 “요한 23세 교황은 국가 간의 대립으로부터의 무장해제는 인간 마음의 무기를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가르쳤다”며 “평화라는 축복을 받으려면 회심, 즉 마음 속의 증오와 불의, 완고함, 이기심을 버리고 용서와 화해, 겸손의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키바 타다토시 전 히로시마 시장(현 히로시마 피스오피스 소장)은 올해 5월 27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투하지역인 히로시마를 방문한 일을 세상을 바꾸는 화해의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아키바 소장은 2010년 1월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히로시마 방문을 요청했을 때 “그럼요, 가보고 싶습니다”라는 열정적 답변을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기까지 6년여 시간 동안 장애물들이 있었지만 결국 방문이 성사됐고 이 방문으로 원폭 투하를 정당하게 여기는 미국인들의 역사적 관점이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아키바 소장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인간 본성 속의 더 나은 점들에 호소함으로써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해결책이 등장할 수 있는 기본 틀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주드 랄 페르난도 더블린 트리니티 탈분쟁 정의연구소 소장은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분단 상황에 주목하면서 “한국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한반도 분단 역사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고 전쟁 역사 속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한 양심성찰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정의와 화해를 위한 윤리적 상상력과 권위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제3회의 ‘한반도 평화현실 진단과 해법’

“사드 배치는 실효성과 합리성 결여

통일, 남북한 모두의 변화 수반돼야”

총론 성격인 제1회의와 제2회의에 이어 제3회의에서는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해법을 위주로 각론이 논의됐다. 조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은 전쟁과 강압으로라도 북한 정권을 교체시켜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이는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면서 북한 체제에 대한 무지의 소산일 뿐 아니라 편견에 가득찬 그릇된 소망”이라고 단정했다. 조 원장은 “한반도 통일과 평화는 남북한 모두가 변화하고 함께 진화(Coevolution)할 때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뜨거워지는 사드(THAAD) 문제도 논의됐다.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사드 배치를 정당화하는 한반도 전면전의 가정은 ▲북한이 남한 해방을 목적으로 전면전을 일으키는 경우 ▲북한 최고지도자가 정신이상으로 한국이나 미국을 공격해 전면전이 발발하는 경우 ▲북한의 우발적 도발이 전면전화 하는 경우 등이지만 모두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드 배치는 실효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왕이저우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역시 중국 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반도의 평화를 검토하며 “사드는 한국 내에서의 정치적 압력도 무시 못할 요소라고 할 수 있지만 사드 배치의 핵심 요소는 강대국 간의 라이벌 구도”라는 말로써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같이 했다. 왕이저우 부원장은 “한중 양국은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고위급 전략 대화를 실시해야 하고 중국은 남북한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앤드류 여 미국 가톨릭대학교 아시아학 소장은 종교적 성향을 드러내는 단체이면서도 북한에서 2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좋은 벗들’, ‘한국의 그리스도교 친구들’, ‘유진 벨 재단’을 예로 들어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강압적 방법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운 만큼 북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지켜보며 신뢰를 기본으로 삼아 북한이 평화와 번영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