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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복음살이] 불안한 사회 늘어가는 마음의 병,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08-17 수정일 2016-08-17 발행일 2016-08-21 제 300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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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치료·상담에 영적 보살핌 함께 이뤄져야
신앙생활은 우울증 예방과 정신적 고통 해소에도 도움
소외된 이웃 위한 봉사활동 ‘회복탄력성’ 키우는 좋은 방안

올해로 30세가 된 A씨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공무원시험에 도전했지만, 벌써 2번째 낙방을 겪었다. 점점 나이는 먹어가는데 일자리를 찾지 못한 불안감과 우울감에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리게 됐다. A씨의 어머니는 “기도하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다”면서 A씨를 데리고 유명한 피정이나 기도회를 다니고 있지만 A씨에겐 이마저도 스트레스다. 학생시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A씨지만, “이제는 뭘 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B씨(42)씨는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6년 전 자다가 화재를 당한 것이 트라우마가 됐다. 화재로 B씨의 아이가 유독가스를 마셔 응급한 상황에 빠졌다. 아이는 다행히 잘 회복됐지만, B씨는 밤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특히 최근에 세월호 참사 등 안전하지 못한 사회의 모습이 자주 나와, 불안감이 더 커지면서 밤을 새는 일도 잦아졌다.

■ 사회적 불안감 팽배로 심리·정신적 고통 증가

취업·벌이·노후 등에 찾아오는 경제적 어려움, 극심한 양극화, 계층·세대 간 갈등의 첨예화, 안전에 대한 불안 등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A씨와 같이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35.4%가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청소년층은 60%가 사회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불안 속에 자살, 우울증 등 심리적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5년 전인 2010년에 비해 16%가량 증가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도 2012년 상담경향분석보고서를 통해 우울증 등 심리·정신건강에 관한 상담이 2008년 4.3%에서 2012년 12.6%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살의 경우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12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연평균 1만4000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다. 매일 30~40명이 자살로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삭심리상담센터 심리상담사 이기상(요셉)씨는 “사회에서 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으로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불안감은 신경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할 뿐 아니라 심각한 경우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문상담과 영적 도움 병행돼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교회는 이렇게 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만큼, 마음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신앙 활동은 우울증을 예방하고 심리·정신적 고통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보고가 많다.

하지만 신앙이 심리·정신적 어려움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기도나 신앙행위만으로 심리·정신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위기상황의 탈출구로 ‘신앙행위’에만 의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리적인 치료와 상담에 종교적 도움을 병행할 때, 심리·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대전가톨릭대학교 영성부장을 맡고 있는 김인호 신부는 “기도의 힘은 분명하지만, ‘기도만 하는 것’으로 도피하는 것은 신앙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고 적절한 치유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우울증이나 심리·정신적인 증세를 치료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 그리고 종교적 도움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회는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상담센터를 운영해 심리·영성적 도움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삭심리상담카페와 같이 카페형 상담소나 수원 인계동본당 상담분과와 같이 본당 차원의 상담소도 설치돼 교회가 운영하는 상담시설이 더욱 신자들 가까이에 자리해가는 추세다.

인계동본당 주임 최인각 신부는 “심리적으로 고통받아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싶어도 온전한 기도를 하기 어렵다”면서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영적인 밝음을 얻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상담분과를 통해 돕고 있다”고 말했다.

■ ‘회복탄력성’ 키워주는 교회로

교회가 사회적 불안 속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상담센터 설치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교회 공동체가 심리적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길러줄 수 있다고 말한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역경과 시련, 실패 등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마음의 힘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고난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도 오히려 이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교회가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예는 ‘긍정성’이다. 긍정성은 회복탄력성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다른 요인들을 끌어올리는 힘이라고 말할 정도로 핵심적인 요소다. 미사 중 강론이나, 피정, 성경공부 등에서 인간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자비, 구원의 희망을 배우고 체득하는 것은 긍정성을 키워줄 수 있다.

지난해 안기민 신부(춘천교구·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가 수원가톨릭대학교 신학생을 대상으로 회복탄력성을 조사한 결과 ‘긍정성’ 평균이 우리나라 성인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 이 연구만으로 가톨릭신자 전체의 긍정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국내외 여러 논문 데이터에서도 신자들의 긍정성이 높고, 내적인 종교성향이 강할수록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안기민 신부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구원을 희망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들의 긍정성을 높이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사제나 교리교사들이 죄, 죄책감, 고통 등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하느님께 대한 희망 등 긍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면 긍정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복탄력성의 요소 중 대인관계능력을 신장시키는 것도 교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전문가들은 교회 공동체가 소외된 이웃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은 소통, 공감능력 등의 대인관계능력을 끌어올려 회복탄력성을 강화시키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 해외 연구에서 가톨릭신자들이 회복탄력성 부문 중 소통·공감능력이 타종교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해 한국교회에서도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교회정신을 바탕으로 소외된 이웃을 만나고 선행을 하는 봉사는 봉사자 스스로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해 긍정성과 행복감도 증진시킨다.

김인호 신부는 “예를 들어 개신교회에 가면 환영하는 분위기인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좀 건조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교회가 대형화 됨에 따라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공동체성이 약화된 측면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회가 소외된 이웃에게 펼치는 봉사활동은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말씀, 찬양, 공동체, 인간관계 등 신앙의 여러 부분이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준다”면서 “교회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회복탄력성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