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건강칼럼] 초심을 되돌아보며

전성하(토마스 아퀴나스) 과장rn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혈액종양내과
입력일 2016-08-16 수정일 2016-08-17 발행일 2016-08-21 제 3008호 2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뼈에 전이가 많이 된 폐암 환자분이 먹을 때 사레가 들린다고 호소했다. 열흘 전 항암치료를 받은 분이다. 뼈에 전이가 심해서 거동이 쉽지 않았고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 분이라, 사레가 들리면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 있으니 금식하고 연하장애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검사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회진을 돌면서 입안을 들여다보니 입안 군데군데 하얀 것이 끼어있었다. 곰팡이다. 칸디다 구내염이 생긴 것이다. 면역력이 워낙 떨어져 있는 데다 항암치료까지 받으면 종종 구강 내에 곰팡이가 자라게 된다. 곰팡이 잡는 약을 사용하고 환자의 증상은 금방 좋아졌다. 부끄러웠다. 기본적인 신체검진만 했었어도 불필요한 검사도 줄이고 환자의 증상도 더 빨리 좋아졌을 텐데….

이름만 들으면 아는 큰 대학병원에서 전이성 유방암으로 근 2년을 치료받다 상태가 악화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가 근무하는 한양방 통합 병원에 내원한 환자였다.

환자와 보호자는 분노에 차 있었다. 이유인즉슨, 2년여간 항암치료를 받으며 잠깐의 진료시간에 교수의 “좋네요”라는 짧은 한마디 말만 들었지만 그저 좋다니까 희망을 꿈꾸며 힘든 치료를 견디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진료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의사가 툭 던진 한마디가, “아시죠? 이제 한 2~3개월밖에 못 사실 것 같아요”였다는 것이었단다. 워낙 환자들이 많이 밀려있어 물어보고 싶은 것도 꾹 참고 그저 “네, 네”만 했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갑자기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그 말 한마디에 2년간의 감사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그 교수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변해있었다. 대학병원의 그 많은 환자와 또 그 많은 죽음 속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의 절실함은 사라지고 있는 걸까?

드라마 의학자문을 위해 찾아왔었던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아기가 아토피피부염이 심해서 한의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3개월 치료 세트가 있어서 3개월 치 한약을 무조건 받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기의 고통을 생각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왔는데 아기가 먹고 설사를 심하게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치료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며 더 먹이라고 해서 비싼 한약을 다 버렸다며 분개하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약이란 것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반응을 보고 난 후 필요하면 처방도 변경하고 해야 하는데 3개월 치를 한 번에 준 그 한의사는 자신의 한약에 ‘환자의 몸이 맞춰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한 달 뒤에는 자신의 실력이 탄로 날까봐 그랬던 것인지….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의료진에게 묻는다. 얼마나 기본에 충실했는지? 환자의 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환자의 상태에 대해 얼마나 쉬운 말로 설명을 했는지? 그래서 환자도 치료에 동참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지? 환자에게 얼마나 양심적이었는지?

처음 의사가 되었을 때 그 초심을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전성하(토마스 아퀴나스) 과장rn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혈액종양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