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45) 사과는커녕 나쁜사람으로 매도하는 이를 용서해야 하나

김정택 신부(예수회·서강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n
입력일 2016-06-22 수정일 2016-06-22 발행일 2016-06-26 제 300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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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사과는커녕 나쁜사람으로 매도하는 이를 용서해야 하나

용서라는 것을 어디까지 해야 할 지 정말 잘 모르겠어서, 하루에도 수차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마음을 달래느라 힘이 듭니다. 저에게 큰 잘못을 한 이가 있는데 저에게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연배가 꽤 많은 편이라 제가 먼저 무슨 말을 하기도 어렵고요. 같은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그 분을 타이르고 저에게 사과하라고 당부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사과는커녕 저에게 더 차갑게 굴면서 저를 도리어 나쁜 사람 취급하고 그렇게 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또 틈만 나면 저와 레지오마리애 활동을 함께 하는 단원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다른 이들이 저와 어울리지 못하게 합니다. 의도적인 따돌림으로 느껴져 마음이 아프고 억울하고 속상합니다. 그런데 한 단원에게 어려움을 털어놨는데, 그분은 도리어 저에게 무조건 용서하라고만 재촉합니다. 신부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하느님 관점에서 판단하길

참으로 난감하고 어쩔 줄 모르게 마음이 괴로우신 것 같아 안타깝네요. 분명히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은 잘못에 대한 사과는커녕, 도리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의도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것 같은 상황에서 화도 많이 나고 속상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왜 주위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사과를 하라고 타일러도 상대방은 듣지를 않고 뻔뻔스럽게 행동할까요?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선은 상대방이 비록 연배가 많다 하더라도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대화를 거는 것이 어렵다면, 잘 아는 레지오 단원 선배 중 한 분에게 속사정을 솔직히 털어 놓고 도움을 청해 보시지요. 만일 그분이 청을 들어 주신다면 세 분이 함께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서로 이야기해 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겠지요.

만일 위의 상황이 잘 마련되지 않는다면, 나에게 일어난 사실을 다시 한 번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시고, 무엇이 두 사람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먼저 준비 기도를 하시고, 내가 하느님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다시 점검해보면서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느님 앞에서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내 기도의 자세가 분명하고 이 사건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시 식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면, 기도를 통해서 많은 내적 위로와 도움을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건에 대해서 내가 내린 판단이 100% 옳은 판단인지, 아니면 이 사건을 이해하는 나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는지를 성령의 은혜를 통해 다시 식별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내 마음에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아량과 자비심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 상태가 된다면, 질문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과연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을 얼마나 용서하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한 성경 말씀이 바르게 마음에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비의 특별희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자비의 특별희년 로고에서 보여주듯 교황님이 요구하시는 잣대는 바로,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특히 주위의 형제들을 적어도 한 쪽 눈 만으로라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희년의 로고는 죄인인 우리를 양처럼 어깨에 짊어지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오른쪽 눈과 사람의 왼쪽 눈이 하나로 겹쳐져 있는 그림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형제들을 적어도 한 쪽 눈 만큼이라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내 주위 형제의 어떠한 잘못이 있더라도 성경에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9,22)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권고를 실천할 수 있게 되겠지요. 특별희년을 지내면서 바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얼굴’이신 예수님의 눈을, 그분의 마음을 닮도록 노력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어려움과 황당함을 통해서, 나 자신이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질문 보내실 곳 : <우편> 04707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학로 16(홍익동) sangdam@catimes.kr

김정택 신부(예수회·서강대 심리학과 명예교수)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