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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청소년 성교육] (4·끝) 성교육과 영적 싸움

이광호(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겸 생명문화연구가)
입력일 2016-05-24 수정일 2016-05-25 발행일 2016-05-29 제 299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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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한 성적 속임수를 경계하라

하느님은 인간을 성적 존재인 남녀로 창조하셨고, 남녀가 결합해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이는 천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인간에게만 베풀어진 특은이다. 성적 결합과 생명의 잉태·출산은 표면적으로는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이지만 영육의 복합체인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영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적대자이자 인간을 증오하는 영적 존재인 사탄은 성에 집요하게 개입해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고 하느님의 영을 품고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려고 한다. 원죄가 성과 관련된 사탄의 거짓말에 아담과 하와가 속아 넘어간 결과임을 생각해보면, 사탄이 인간을 파멸시키려고 성에 개입한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태초의 남녀는 열매를 따먹자 눈이 열려 자신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느꼈다.(창세기 3,7) 왜 갑자기 수치심을 느꼈을까?

욕망의 눈이 열리면서 서로의 몸을 쾌락의 도구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탄의 유혹에 자신의 의지를 넘김으로써, 음란의 영이 아담과 하와의 영 안으로 들어와 결합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속임과 넘어감으로 인해 음란의 영이 확산되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 더욱더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인 인간 남녀에게 성교육이 필요한 근본적이면서 영적인 이유다. 또한 교회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 차원의 성교육을 선포해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지난 7년 동안 소비주의와 상업적 미디어라는 표층 현상에 치중하여 성교육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지성적이고 사회적 차원의 대안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지성의 눈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성교육의 영적 차원을 간과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악한 영들이 하는 일을 인간의 지성으로만 대항하여 막고 이기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어리석음이자 오만이었고, 악한 영들이 이 두 통로를 통해서 쏟아 부은 공격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영적인 대상은 영적으로 다루어야 하는데, 머리로 다루려고 했기 때문에 당한 손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성교육은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치열하고 처절한 영적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됐다.

이 시대는 ‘성적 자유’를 인간 해방으로 포장하여 선전하고 많은 청소년들을 그리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는 임신 낙태 영아유기 영아살해만이 아니라, 같은 죄를 반복하게 하는 죄성을 자손에게 전수시켜 대를 이어 인간을 속박하고 불행하게 하는 교묘하고 사악한 속임수다. 여기에는 ‘성적 자유’가 아니라, ‘음란’이라는 정확한 이름표를 붙여주고 청소년들이 이를 경계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이 교육은 이 시대에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도 더러운 영들을 내쫓으시면서 그들과 싸우셨다. 가톨릭 성교육도 예수님처럼 음란의 영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런 싸움이 활발하게 일어나야만 청소년들이 해방과 치유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고 교회가 건강하게 재탄생할 수 있다.

이광호(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겸 생명문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