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속 性 (6) 불법 ‘피임약’도 인터넷에선 통과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6-02-02 수정일 2016-02-02 발행일 2016-02-07 제 298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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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반대한다”

무절제한 성문화 조장 우려
처방전 없이 약국서 쉽게 구입
인터넷에서는 응급피임약에 관한 ‘카더라’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돌고 있을 뿐 아니라, 불법 낙태약 구매도 익명으로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 인터넷 통하면 막는다?

‘만일에 대비’ ‘연중무휴 365일 24시간 상담 가능’ ‘야간진료’ ‘사후피임약 당일 처방’…. 뒤이어 ‘급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의사 처방전 없이 응급피임약을 구입하는 방법과 복용법, 효과, 임신 가능성 등에 관한 문의가 빗발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응급피임약, 사후피임약 등의 검색어를 치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일부 전문가의 답변 외에도 청소년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들의 이른바 ‘카더라’ 정보 공유 댓글 등이 무분별하게 검색된다.

‘낙태약’을 치면 더욱 어이없는 결과를 볼 수 있다.

‘○○○ 정품’ ‘○○○ 파는 곳’ ‘먹는 낙태약’ ‘○○○ 최저가’ 등의 인기검색어에 이어, ‘인터넷에서 주문 가능’ ‘서울 시내 전지역 2시간 이내 배달’ ‘낙태 수술보다 안전한 낙태약’ ‘마취 필요 없고 통증 없어’ ‘수술에 비해 매우 저렴한 비용 35~45만 원’ ‘낙태 실패율 10만 명 중 1명’ 등의 홍보 문구가 쏟아져 나온다. 실시간 상담이 가능한 모바일메신저 아이디와 전화번호도 주르륵 이어진다.

자궁에 착상된 태아를 사출(瀉出) 시키는 낙태약은 수입 및 유통 자체가 불법이지만, 인터넷 사이트에 ‘낙태약’ 세 글자만 처넣으면 공식 홈페이지를 자처하는 곳을 수십 군데 찾을 수 있다. 대부분 ‘국내 공식 판매처’라고 버젓이 홍보하거나, ‘약국’ 또는 ‘병원’ 이름을 홈페이지에 걸고 불법 영업을 하는 업체들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무분별한 정보와 불법 행태들은 이른바 ‘낙태약’에 대한 그릇된 정보와 의식들을 걷잡을 수 없이 확산시킨다. 실제 2001년 국내에서 응급피임약 수입과 시판이 허가되면서부터 먹는 약을 이용한 낙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시돼왔다. 그런데 식약처는 그나마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기 위한 협의를 다시 진행 중이어서, 보다 전문적인 대처가 시급한 실정이다.

일반의약품으로 지정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응급피임약’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의사 처방전을 먼저 받아야 한다.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덕분이다. 그런데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재추진, 전환 여부를 올 상반기 중에 결정한다고 밝혔다.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면 처방전 없이 누구나 쉽게 약국에서 응급피임약을 살 수 있게 된다. TV 광고도 가능해진다. 제한 없이 응급피임약 TV 광고를 접한 성인들은 물론 청소년들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약을 구입하고 복용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2001년 당시 식약청은 응급피임약 수입 여부를 논의하면서, 이 약은 의사 처방 없이는 판매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2년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시도했고, 당시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와 의학계 등의 반발에 부딪혀 재분류 결정을 3년간 유예했다. 이후 식약처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 피임약의 부작용 실태 및 설문 조사 등을 펼쳤으나 현재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일반의약품 전환 추진 근거로 “장기간 또는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고, 1회 복용하는 약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 등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는 이미 응급피임약이 응급 시에만 복용하는 약이 아니라, 성관계 후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으로 받아들여져 있다”면서 “20대 여성들이 응급피임약에 의존하는 행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진료 현장에서 의사들은 응급피임약을 매번 처방받기 번거롭다면서 여러 회분을 한꺼번에 처방해 달라는 환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응급피임약은 먹는 낙태약

응급피임약은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고용량으로 투여, 호르몬 변화를 통해 자궁 내벽을 탈락시키는 약품이다. 이 약은 ‘전문의약품’임에도 불구하고 소비량이 급증해왔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3만7537건이던 응급피임약 청구건수가 2014년에는 15만9777건으로 4.5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의약품 전환에 찬성하는 이들은 “응급피임약은 성관계 후 72시간 내에 복용해야 효과가 있는데 의사 처방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결국 피임 효과가 떨어진다”는 등의 주장을 내세운다. 반대하는 이들은 응급피임약이 여성의 건강을 해칠뿐 아니라 약물 오남용 및 무분별한 성문화 등을 확산할 우려가 높다고 말한다. 또 남성은 피임을 방관하고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우거나, 미성년자들이 불건전한 성문화에 보다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시한다.

가톨릭교회는 응급피임약에 관해 개발 연구가 시작될 때부터 “낙태의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인간 생명 자체의 출산과 그 존엄성과 관련된 근본 가치들을 거스르고, 성의 본래 가치를 상실하게 하며, 무절제한 성문화를 조장하거나 방조할 것”이라고 개발 및 판매 등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또 현재 시판되는 응급피임약은 ‘화학적 낙태약’ 혹은 ‘조기 낙태약’이라고 밝히고, 판매 및 사용 중단을 촉구한다.

특히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와 생명운동본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비롯해 전국 각 교구 생명위원회와 관련 기관단체 등은 응급피임약의 무분별한 소비를 막기 위해 지속적인 연대활동 등을 펼쳐왔다.

아울러 각 기관단체들은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절대 허용해선 안 된다고 밝히고 “응급피임약 문제는 단순히 약리적인 면만이 아니라 윤리적·사회적·의료적 문제들을 함께 고려해 대안을 실천해야 한다”고 전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