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김은영(TV칼럼니스트)
입력일 2015-12-08 수정일 2015-12-08 발행일 2015-12-13 제 297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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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을 넘어, 맥락을 읽자
친구나 가족들이 같이 본 작품에 대해 감상을 나누고 갑론을박하는 것만으로도 편집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이 될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이 지면을 통해 현대사회의 가장 광범위한 대중매체인 TV를 읽어왔다. 대중을 위로하고 희망을 준 작품들을 통해서는 교회가 취해야 할 매력적인 표현방식에 대한 실마리를 봤다. TV를 끄고 돌아서면 그대로인 현실을 통해서는 매체가 실제를 대체할 수 없음을 실감했다. 그 성찰을 마치는 지금,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는 매체의 성격에서 오는 한계와 이를 보완하는 실천에 대한 것이다.

연극배우 출신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몸의 신학’ 강론으로 지적하신 대로, TV는 인격적 접촉이 배제된 기계적 복사물이다. TV만 틀면 나오는 게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공연(연극, 무용, 음악회)과 TV 프로그램을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공연장에 가면 현장의 열기, 공연자들의 체온과 열정, 퍼포먼스 사이사이의 침묵과 긴장, 무대와 객석의 일체감이 피부에 와 닿는다. 반면 퍼포먼스의 일부를 네모난 틀로 잘라내고 디지털 부호로 변환해서 수신 단말기의 유리창에 전송하는 영상물은 어떨까. 후각 미각 촉각이 개입할 여지도 없거니와,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시간들과 어설픈 퍼포먼스는 거의 다 잘려 나간다. 프로그램 홍보를 위한 인터넷 영상에서는 편집이 더 심해진다. 60분짜리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려 3분 이내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다 보니 강렬한 장면만 조각조각 떼어다 붙이는 식이다.

편집된 콘텐츠의 편식에서 오는 부작용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극적 긴장을 위한 배우들의 거친 언동과 가수들의 고음 경쟁, 예능 프로그램의 맛집 추천이나 현장 체험이 대중의 여가를 지배하는 현상도 그렇지만, 좋은 것만 편집된 결과물에 길들여지다 보면 카메라 밖 현실마저 평면적으로 보게 될 수 있다. 한때 방송계를 휩쓸었던 저명인사들의 강연 영상을 예로 들어보자. 청중이 선망하는 스타의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 겪어온 고통과 인내, 자신의 직업적 역량이 아닌 TV의 권위가 부와 명예를 안겨주는 부조리는 잘 감지되지 않는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화면에 멋지게 보이려는 스타들의 비인간적 자기관리, 작품 기획의 밑거름이 된 현실 분석과 상업적 판단은 감춰지기 일쑤다.

편집으로 취사선택되고 굴절된 매체인 TV를 멀리할 수 없어도, 우리에게 남는 대안은 있다. 적극적인 읽기를 통해 탈락된 맥락을 되살리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매개로 즐기는 감상평(리뷰) 쓰기, 프로그램 내용과 관련한 신문의 기획기사나 도서를 읽음으로써 심층적, 입체적인 정보 섭취하기, TV에 소개된 관심 있는 분야 체험하기, 주일학교나 동아리에서 영상물 직접 만들어보기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친구나 가족들이 같이 본 작품에 대해 감상을 나누고 갑론을박하는 것만으로도 편집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이 될 수 있다. 시청자가 찾아낸 맥락이 제작자의 의도와 달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맥락을 실마리 삼아 세상을 입체적으로 읽고 식별하는 일이니까.

김은영(TV칼럼니스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김은영(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