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140)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57) - ‘익명의 그리스도인’ 1호, 니코데모

차동엽 신부
입력일 2015-11-03 수정일 2015-11-03 발행일 2015-11-08 제 2968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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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사이 틈에서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 발언 지지
■ 명망가 권력실세

니코데모는 바리사이인 동시에 산헤드린 회원이었다. 그가 바리사이였다는 사실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선민중의 선민이란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바리사이의 역사는 유다 마카베오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우상 숭배를 강요하고 율법을 말살시키려 했던 당시, 율법을 사수하려고 불같이 일어난 사람들이 바로 바리사이였다. 그들의 본래 취지는 좋았다. 그들만큼 열심한 이들이 없었다. 문제는 이후 그들이 종교적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하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점점 지나치게 형식주의로 기울어 갔다는 점이다.

또한 니코데모가 산헤드린 회원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정치적으로도 권력층에 속한 실세였음을 의미한다. 산헤드린은 그리스 도시들의 의회를 모델로 삼아 구성된 일종의 ‘최고 의회’다. 산헤드린은 사제들, 원로들, 율법 학자들을 대표로 70인이 선정되고 여기에 의장격인 ‘대사제’가 추가되어 도합 71인으로 구성된다. 이때는 권력 분립이 안 되었기에 국회 입법 기능과 사법 기능을 동시에 관장하였다. 이들이 훗날 예수님의 재판에 깊이 관여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였다. 어쨌든 니코데모는 율법 학자 몫으로 최고의회 회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바리사이에 율법 학자에 최고의회 회원이라는 3중 특권을 누렸다는 얘기가 된다.

■ 비밀 방문 문답

세도가 니코데모는 도대체 무엇이 아쉬웠던 것일까. 그는 어느 밤을 틈타 예수님을 몰래 찾아간다. 그는 스스로를 낮춰 예수님을 ‘스승님’이라 부르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2).

이 말은 공생활 초기 예수님께서 범상치 않은 말씀의 권위와 기적들로 유다인 지도층 사이에서도 어떤 돌풍을 몰고 왔는지 충분히 짐작게 해준다. 예수님은 니코데모가 뭔가 한 수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채시고, 생판 낯선 가르침을 주신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위로부터 태어난다? 아리송해 하는 니코데모에게 예수님은 부연설명을 해 주신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요한 3,5-6).

갈수록 태산, 점입가경이다. 그리스도교 시대에 비로소 꼴을 갖춘 ‘세례’를 가리키는 이 말을 니코데모가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답답할 땐 물음이 상책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요한 3,9)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요한 3,10)

예수님은 니코데모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빌미로 하여, 내친김에 그의 동료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게 ‘쓴소리’를 던지신다. “당신은 그중 깨어있는 선각자이니 가서 동료들에게 똑똑히 전하시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이 기득권 옹호의 본능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삐딱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니코데모에게 저 유명한 구원진리를 설파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이 말씀과 관련해서도 예수님의 촉은 걸핏하면 ‘시비’와 ‘딴지’를 걸어왔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를 향하고 있다. 그러기에 말씀의 뒤끝이 결코 곱지 않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요한 3,18-19).

심판?! 어둠?! 이 말씀의 칼끝이 주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를 겨냥하고 있음을 느꼈을 때, 예수님께 호의적이었던 니코데모라고 기분이 멀쩡했을까. 하지만 곱씹을수록 백번 지당한 말씀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선포에 대하여 자신들이 얼마나 완악했는지를 뼈아프게 시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 예수님을 두둔하다

니코데모는 마음속으로 이미 예수님의 제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다.

그러나, 니코데모는 결정적일 때에 용기를 발휘하여 예수님을 두둔하였다. 예루살렘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전정화 사건의 여파로 예수님에 대한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적개심은 극에 달했다. 급기야 그들은 예수님을 처형하고자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해 올 것을 명한다. 얼마 후 맨손으로 돌아온 그들이 변명으로 한다는 말이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였다. 저들은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요한 7,47-49).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니코데모가 동료들을 향하여 예수님을 두둔하고 나선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요한 7,51)

소신발언이었다. 돌아온 것은 거센 역풍이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

이것으로 니코데모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종결된다. 이후 동료들 사이에서 그가 어떤 질시를 받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믿는 유일신 야훼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 올리지 않았을까.

야훼 하느님,

그는 누구입니까?

감히 여쭙습니다.

나자렛 예수, 그는 누구입니까?

듣자하니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요한 2,9 참조) 등 갖은 표징들을 행한다 하고,

말씀에는 누구고 혼쭐내는(요한 2,16 참조) 권위가 있다 하고,

스스로 당신의 ‘외아들’이요 ‘빛’(요한 8,21)이라 주장하는,

저 갈릴래아 사람,

그는 정녕 누구입니까?

저항할 수 없는 호감에 이끌려, 아무도 몰래, 그를 찾아가 만났습니다.

잠깐의 대화로, 케케묵은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투명한 하늘이 보였습니다.

청컨대, 부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루카 11,23 참조)의 잣대 대신에

“나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내 편에 서 있는 자다”의 잣대로

저를 심판하여 주소서.

야훼 하느님,

이 용기 없는 위선자를 용서하소서.

그를 메시아로 믿어도 감히 고백하지 못하고,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도 선뜻 따라나서지 못하고,

반대자·적대자들 눈치만 살펴왔던 저.

비겁하게 숨어서 그를 응원하는 저 니코데모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를 원조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 불러주소서.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차동엽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