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김은영(TV칼럼니스트)
입력일 2015-10-27 수정일 2015-10-27 발행일 2015-11-01 제 296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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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효용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한 장면. MBC 제공
TV 드라마의 미덕 중 하나는 현실에서 보기 드물거나 사라졌다고 믿는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다. 잘난 사람이 아니어도 소중한 대접을 받거나 선한 사람들의 용기로 정의를 회복하는 이야기는 위로와 희망을 준다. 그런 까닭에, 따뜻한 분위기와 해피엔딩의 드라마들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를 얻곤 한다.

근래의 인기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MBC)도 그런 작품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인순이는 예쁘다’, ‘고맙습니다’, ‘최고의 사랑’ 등의 계보를 잇는,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던 여인이 강단 있고 따뜻한 성품으로 진심을 인정받고, 사랑을 얻고, 주변인들과 교감하는 줄거리의 드라마다. 이번 작품에서는 못난 외모와 초라한 경력에 위축된 미운 오리 김혜진(황정음)이 주인공이다. 어른들은 못 이뤘어도 독자들이 살아갈 세상에선 이뤄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전하는 것이 동화의 기능이라면, ‘그녀는 예뻤다’는 이 기능에 충실한 작품이라 하겠다.

드라마가 환기하는 미덕은 가정의 소중함,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마음의 눈이다. 4각 애정관계로 엮인 주인공들 중에 혜진은 유일하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인물이다. 가세가 기울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 삼류 대학에서 공부하는 처지가 됐어도, 혜진은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부모는 딸을 자랑스러워한다. 반면 주변인들은 넉넉한 재산은 있되 마음 붙일 가족과 공간은 없다. 혜진의 친구 하리(고준희)는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와 샘 많은 새어머니를 피해 집을 떠났다. 혜진을 사랑하는 성준(박서준)과 신혁(최시원)이 거주하는 호텔 스위트룸은 값비싼 셋방일 뿐이다.

사랑받고 자라 다정다감한 여주인공은 고독한 주변인들의 안식처요 어머니가 된다. 모두가 이상적인 원(原)가족을 가질 수는 없어도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줄 수는 있는 것이다. 주변인들이 혜진에게 의지하면서 그녀의 보이지 않는 장점들―성실성과 업무 역량, 유연한 순발력, 공감과 배려심은 빛을 발한다. 그 장점이 두드러질수록 주변인들의 내면은 더 피폐해 보이지만, 타인의 미덕을 알아봤다는 면에서는 그들도 예쁜 사람들이다. 고독한 남자 주인공들의 애정은 혜진으로 하여금 직장생활에 새로 도전할 용기를 갖고 외모까지 단장하게 만들었으니, 저 가엾은 이들도 나름대로 좋은 일을 한 셈이다.

갈등을 이겨내고 모든 인물들이 착함과 화해로 수렴되는 TV 동화. 많은 드라마들이 배경과 설정만 바꾼 채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고 그마저도 TV를 끄면 사라질 환상인 것은 시청자들이 더 잘 알지만, 그 효용을 무시할 일은 아니다. 어린날의 동화는 잊었어도 여전히 꿈과 위로가 필요한 어른들에게, 드라마는 실사 화면과 공감되는 언어를 통해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가치와 그에 대한 열망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라는 이상향을 세상 속에 구현해야 할 우리 교회는 TV 동화만큼의 현실 분석과 대중친화적 표현을 하고 있는가.

김은영(TV칼럼니스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김은영(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