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그 집에는…’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입력일 2015-10-13 수정일 2015-10-13 발행일 2015-10-18 제 296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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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걱정하지마. 너도 잘 지내지?
연극 ‘그 집에는…’ 포스터.
아름답고 청량한 10월, 연중 공연 수 최다, 각종 축제에 크고 작은 바자회, 다양한 거리공연까지 갈 곳도 볼 것도 많아 몸과 마음이 괜히 분주한데 문득 눈길을 끄는 제목 하나. ‘그 집에는… -집주인 친정엄마와 셋방살이 시어머니의 일촉즉발 동거기’라는 설명으로 그 내용이 명확해진다.

부모님과의 동거가 신종재앙으로 여겨지는 요즘 이런 소재가 먹힐까 싶은데도, ‘그 집에는’ 다음에 이어지는 말줄임표에 눈이 머문다. 말줄임표를 사용하는 카피도 많은데, ‘이 표에 뭘 묻어 두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여기에 묻어 둔 게 뻔한 건지 찡한 건지는 가봐야 알리라.

시골집의 흔한 풍경. 마당, 개집, 장독대, 툇마루, 마주 보이는 작은 문들. 하나는 나중에 서울사람 시어머니 정애를 기절케 한 변소문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 금순과 딸 경희의 방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쪽마루가 붙은 빈 방인데 이 방을 두고 이제부터 사건이 벌어질 참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여자와 늙은 개 순돌이다. 순돌은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메인 주인공인데 금순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는데다, 달 밝은 날이면 3년 차 과부 경희의 하소연도 밤새 들어주는 충성용맹다정견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한 경희와 불쌍한 딸을 거두어들인 금순의 그렇고 그런 어느 날, 엄마는 빈방을 세놓으려고 광고를 낸다. 그러나 딸은 낯선 사람이 있는 게 싫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큰 가방 두 개를 앞세운 정애가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자기도 금순이 낸 광고를 봤다면서…. 집수리하는 동안만 세를 내고 살겠단다. 경희는 놀랐고, 금순은 기가 막힌다.

사돈하고 불러대는 정애에게 금순이 ‘꽥’ 소리를 지른다. “사돈은 무슨 사돈, 듣기 싫어 그놈의 사돈소리.” 정애가 반문한다. 그럼 사돈이지 사돈이 아녜요? 금순이 졸도 직전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정애는 반찬 투정에 며느리에게 잔소리까지 해대며 금순과 경희의 삶에 끼어든다. 경희가 묻는다. “아들 죽인 년이라고 쫓아내시곤 어머니 여기 왜 오셨어요?” 잠시의 정적이 이어지고 이윽고 정애가 말한다. “아들 제사 지내려는 데, 혼자는 지낼 수 없어서.” 금순이 펄펄 뛴다. “안 돼! 나가, 나가!”

그날 밤, 금순이 불 꺼진 정애 방 쪽마루에 앉아 말한다. “나도 내 사위 사랑했어요, 사돈이 우리 경희 봐주믄 안 되겠어요?” 다음 날 아침, 단아한 청년 사진이 놓인 제사상에서 금순이 소주를 따른다. 우리 아들은 와인을 좋아하는데 하는 정애에게 “헐껴 말껴” 금순이 소리를 지른다. 경희가 웃는다. 그리고 늦은 밤, 경희가 마당에 혼자 있는 순돌에게 말을 건넨다. “너 우리 남편 다리 물었던 거 생각 나?” 둘은 키득댄다. 그리고 경희는 달을 보고 읊조리듯 한마디를 한다. “우리, 걱정하지마. 너도 잘 지내지?”

‘그 집에는…’이라는 그저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통해 삶이란 그저 그런 고리타분함을 함께 견디는 것이라는 게 작가가 하고픈 말이다. ‘함께’라는 것은 나와 누군가의 동행이고, 그 누구는 물론 누구나 될 수 있다. 나를 줄 수 있고 믿을 수 있다면, 그게 순돌일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안다. 순돌이로는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참 좋은 것을 가졌다. 참 좋은 몫을 택했다. 이것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리란 새삼스런 다짐 또한 얼마나 귀한 것이랴.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