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물관 문화 순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 수녀원 역사관 (상)

전종희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사진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입력일 2015-09-22 수정일 2015-09-22 발행일 2015-09-27 제 296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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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대구지역 수도자들 삶의 모습 한눈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구 성당(현재 역사관) 내부 모습.
우리는 가끔 현실의 삶에서 영적인 힘을 잃을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원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런 분들을 위해 좋은 장소를 소개하고 싶다.

대구광역시 도심 문화 탐방 코스 가운데 골목투어 5코스에 들어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이다. 모원을 프랑스에 두고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한국에도 서울과 대구에 관구를 두고 있다. 특히, 초기 영·호남 수도회의 산 역사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이하 ‘대구 수녀원’) 역사관을 탐방함으로써 순례의 기쁨이 더 충만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올해는 대구에 수녀원이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대구 수녀원은 건물 자체가 문화재이며 역사와 유물을 통해 초기 대구교구 수도자들의 활동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된다. 손때 묻은 유물들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걸었던 작지만 큰 의미를 지닌 100년의 시간 여행이 되겠다. 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먼저 언급할 대목은 대구교구 신설과 대구 수녀원 본원 설립 과정이다.

1911년 6월 11일 로마 교황청에서는 조선대목구(단일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관할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분리해 대구교구를 신설하고 제1대 교구장으로 드망즈 주교를 임명했다. 그리하여 조선의 단일교구가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리됐다. 이에 드망즈 주교는 교구의 제반 시설을 완비하며 복음의 터전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봉사할 수녀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드망즈 주교는 이미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을 이곳에도 오게 함이 좋겠다 하여 프랑스 샬트르의 총장 수녀에게 대구 수녀원 설립을 요청했다. 한편 대구교구 출범 후 드망즈 주교와 로마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인 베이 드 베이야 주교 사이에 대구교구 내 수녀원 설립과 후원에 관한 구체적 협약이 체결돼 드망즈 주교는 1914년 6월 16일 프랑스 샬트르의 총장 수녀에게 수녀원 설립 허락을 공적으로 요청하면서 그 필요성과 연유, 건축 자금, 기타 계획에 관한 협약서의 사본을 동봉해 발송했다. 협약서 내용은 대구 수녀원과 대구교구 초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기에 다소 길더라도 인용하고자 한다.

<존경하올 총장 수녀님,

전교지에 알맞은 수녀원을 설립하여 수녀들을 일하게 하지 않고서는 저는 마치 발동기 없는 기계와도 같아서 자신에게 속한 여러 가지의 일을 잘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15년 전에 부산에서 새둥우리를 마련할 테니 새들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에 다른 수녀회에서 오고 싶어 했습니다만 이 나라에 이미 오랫동안 갖은 고통을 감수하며 일해오고 있는 귀 수녀회에 미쁨(믿음직하게 여기는 마음)을 두기 때문에 이렇게 청합니다.

도쿄의 관구장 수녀와 서울의 원장 수녀에게 언약한 대로 대구수녀원 설립에 필요한 수녀를 주시면 그 수녀들이 도착하는 즉시 수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이 갖추어진 집과 땅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이 땅은 대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고 주교관 바로 옆이라 수녀원 지도신부가 주교관에 유숙할 수도 있고, 또 큰 길이 옆에 없어서 조용하며 조건이 좋습니다. 수녀원 설계는 위의 두 수녀들의 의견을 따랐지만 수정할 것이 있으면 고쳐서 보내주십시오. 건축은 편리하고 견고하며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유의하였고, 앞으로의 사업 확장을 예견하여 터는 넓게 잡았으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황청의 허락이 있으면 같은 나라에서도 두 수련원을 둘 수 있다고 했으니 대구 수녀원에 수련원 설립도 간청합니다.>

드망즈 주교는 초기 대구교구를 위해 수녀원 설립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했으면 수녀들 없이 사목해야 하는 자신을 ‘발동기 없는 기계’와 같다고 표현했을까!

드망즈 주교 주도로 현재의 대구 수녀원 본원 건물(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4호)이 1915년 10월에 완공됐고 프랑스 수녀 1명과 한국인 수녀 3명이 이곳에 머물며 30명의 고아들과 함께 첫 사도직을 시작했다. 그리고 드망즈 주교는 10년 후에 지금의 역사관 건물인 성당(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3호)을 신축했다. 사실 두 건물은 어떤 유물보다 대구 수녀원의 귀중한 자산이다.

본원 건물의 양식은 유럽 중세 시대에 유행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을 혼용한 것이다. 처음 지을 때의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회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 받는다. 특히 옛 성당인 현재 역사관 건물의 평면구성은 남북이 긴 장방형이며 출입구는 남쪽의 아케이드를 향해 있다. 규칙적인 비례에 충실한 르네상스식 외관과 궁륭형 천정으로 마감한 고딕식 내부공간은 이 건물의 독창적인 양식으로서 대구지역의 천주교 역사와 함께 서구식 종교건축의 변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역사관 관람시간은 매주 화요일~주일 오전 9시~11시30분, 오후 1시30분~4시까지며 월요일과 공휴일, 성삼일, 부활대축일 등에는 휴관한다.

※문의 010-2924-2646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 담당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 내부 전시공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수녀원 첫 수녀들의 모습.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에 소장된 드망즈 주교 친필 문서.

전종희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 역사관),사진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