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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목 현장을 가다] 신임 군종사관, 화랑본당 주임 윤성민 신부의 하루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5-08-12 수정일 2015-08-12 발행일 2015-08-16 제 295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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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100km길 달리며 병사들에게 ‘위로’ 전합니다”
군종병과 함께 본당 운영하며
평일엔 부대 곳곳 찾아가 위문
신자보다 비신자 더 자주 만나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모습 ‘보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5일 오전 10시30분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군종교구 화랑본당. 본당 주임 윤성민 신부와 군종병 심재경(시몬) 상병이 차에 시원한 캔커피와 간식을 싣고 있었다. 이날 오후까지 이어질 부대 방문 일정과 행정처리 결과 확인은 필수사항. 오전에는 자대배치를 앞두고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대기 중인 보충병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고 오후에는 영창 징계자를 위문하는 날이다.

■ 신임 군종신부가 사는 법

군종장교로 임관해 일선 군부대에서 갓 사목을 시작한 군종신부를 떠올리면 갖가지 궁금증이 일어난다. 출신교구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생활하다 군종교구에서 첫 주임신부를 맡게 됐을 때의 소감과 사무장도 식복사도 없이 본당을 운영하는 방식 등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화랑본당에는 사무장이 없는 대신 ‘멀티 플레이어’인 군종병이 있어서 본당 운영에 큰 불편함은 못 느낍니다. 보좌로 있을 때와는 달리 주임신부는 본당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데서 책임감을 느끼죠. 음식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간단히 직접 해서 먹습니다.”

군종사관 제73기로 6월 26일 임관해 7월 1일 화랑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윤 신부가 군종신부가 된 후 가장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신자보다 비신자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는 사실.

윤 신부가 사목을 책임지는 화랑본당은 육군 제11사단을 중심으로 제3기갑여단과 제1야전수송교육단까지 넓은 범위를 관할한다. 군종신부는 교구와 본당에서는 사제이면서 소속 부대에서는 지휘관을 보필하는 군종참모로 현역군인이라는 이중직함을 지닌다. 화랑본당 관할 부대 병력 중 천주교 신자가 아닌 90%의 장병들도 윤 신부에게는 똑같은 사목 대상이다. 그 가운데는 불교나 개신교 신자까지 포함된다. 민간교구 사목자와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부분이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민간본당 사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 신부는 화랑본당과 대건·사자·양업공소에서 총 4대의 주일 미사를 봉헌한다. 주말에는 신자 장병들이 성당이나 공소로 윤 신부를 찾아온다. 하지만 평일에는 반대로 부대 월간계획표에 따라 윤 신부가 부대 곳곳으로 장병들을 찾아가 위문이나 교육을 담당한다.

“평일에는 주로 비신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매주 운전해서 이동하는 거리가 최소 100km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군종교구 화랑본당 주임 윤성민 신부(왼쪽)가 8월 5일 오전 육군 제11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자대배치를 앞둔 보충병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 같은 ‘군인’으로

제11사단 신병교육대 ‘화랑 아카데미’. 윤 신부가 들어서자 일순간 보충병 30여 명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5주 동안의 신병교육을 수료하고 군복무하게 될 자대 배치를 기다리는 5일 정도의 기간은 보충병들에게는 긴장의 연속이다.

윤 신부는 “덥지?”라는 말부터 꺼냈다. “예, 그렇습니다!” 우렁찬 대답이 작은 강의실을 진동시켰다. “저는 11사단 군종부 윤성민 신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윤 신부는 칠판에 이름과 ‘대위’라고 계급을 적은 후 천주교, 불교, 개신교 신자 수를 먼저 파악했다. 보충병들은 쑥스러운 듯 좀처럼 손을 들지 않았다.

“듣고 싶은 곡 신청할 사람 있어?” 윤 신부는 의외로 스마트폰에 최신 가요 음원파일과 미니 스피커를 준비해와 음악으로 인성교육을 시작했다. 한 보충병이 최신 유행곡 걸스데이의 ‘링마벨’을 신청했다.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굳어 있던 보충병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따라 부르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발장단을 맞추는 모습도 보였다.

윤 신부는 10년 전인 2005년 1월 최전방 강원도 고성에 입대해 추위에 고생하던 이야기와 해안 GOP에서 밤샘 경계근무를 하던 추억을 들려줬다. 교육 중간중간 ‘해피 띵스’, ‘양화대교’ 같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570일 남았지만 나는 1400일 남았습니다.” 이제 군생활을 시작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윤 신부는 자신의 남은 군생활이 훨씬 더 길다는 말로 보충병들을 ‘확실하게’ 위로했다.

■ “병사들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신병교육대를 나와 점심을 해결한 윤 신부가 잠시 쉬지도 못하고 오후 2시경 향한 곳은 제11사단 헌병대 영창. 군대가 외부와 단절된 세계지만 영창은 군대 안에서도 단절된 곳이다. 윤 신부는 징계 입창자를 위문하러 이동하면서도 군종병과 간식으로 구입할 햄버거 종류와 가격, 병사들의 선호도를 꼼꼼히 따졌다.

영창에서 징계 받고 있는 병사는 10여 명. 영창 내 다목적실에서 징계 입창자와 얼굴을 마주한 윤 신부는 “밥 먹었지? 그래도 배고프지?”라며 햄버거와 음료수를 나눠주면서 역시 노래로 병사들의 긴장을 풀었다.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영창을 방문했지만 윤 신부는 친형이나 친한 친구처럼 영창에 들어온 사연과 출신 지역, 전역 후 계획 등을 놓고 한 사람 한 사람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경계근무 중 순간적인 실수로 징계를 받고 있던 한 병사는 “이곳에서는 외부인과 대화할 기회가 전혀 없는데 성직자가 찾아와 주셔서 바깥 소식을 들려주시니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병사는 “답답한 제 마음을 신부님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제가 오늘 만난 병사들은 여러 교육을 이미 받고 있습니다. 저는 병사들에게 ‘쉬는 시간’을 주고 싶어요. 병사들이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윤 신부가 말한 ‘쉬는 시간’, 병사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