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쉽게 풀어쓰는 영신수련] (28) 주님의 나라

유시찬 신부(예수회)
입력일 2015-07-07 수정일 2015-07-07 발행일 2015-07-12 제 2952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영들의 전쟁도 봤고 하늘나라의 계획도 봤습니다. 이젠 이 모두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본래 영신수련 구조에서는 둘째 주간의 첫머리에 놓여 있습니다만 우리가 앞에서 봐 왔던 같은 맥락에서 이 자리로 옮겨 본 것입니다.

이 묵상도 대단히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이 묵상 내용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꿈과 비전이 담겨 있고, 우리를 초대하는 권고가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꿈은 이 땅과 하늘을 연계시켜 통째로 하늘나라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신수련 책에서는 ‘온 세상과 모든 적을 정복해서 내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영적 차원에서 땅과 하늘이 온전히 완성된 하늘나라를 만드는 것이 주님의 비전입니다.

주님의 이 꿈은 우리 삶의 모든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이는 살아가며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하고자 할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판가름하면서 우리 선택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할 때 제일 먼저 떠올라야 하는 준거점이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과 모든 적을 정복한다는 말이 좀 거칠고 맘 편하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적 차원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영적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그런 부담감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온 세상과 모든 적이란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에고(자아)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의 작동입니다. 에고를 중심으로 해서 비교 경쟁과 투쟁 속에서 이기적 욕망만 채워 나가려고 애쓰며 싸울 뿐, 더불어 하나 되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과 생명을 상실한 체계를 말합니다. 이러한 에고 시스템의 작동을 그저 인간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영들의 전쟁이란 차원에서 알아듣기 때문에 모든 적을 정복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에고 시스템 속의 악령들은 성령 시스템을 무너뜨리려고 별별 교활하고 사악한 짓거리들을 서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는 아버지의 통치 하에 생명과 사랑과 기쁨이 온전히 실현되어 있는 반면, 아직 이 땅에서는 그런 하늘나라가 제대로 실현되어 있지 않음을 보시면서 크게 안타까워하시고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일에 함께 동참해 달라고 초대장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의 이 초대가 마음에 들고 응할 생각이 있는가?’

주님의 이 초대는 그저 무지갯빛의 아름답고 좋은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초대에 응하게 되면 나름대로 치러야 할 대가 내지 수고로움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의식주에 있어서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만족해야 하고,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일하며 수고로움을 더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초대에 응할지 여부를 결정할 때는 이런 고통과 희생을 염두에 둔 결정과 선택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나라의 계획에서 성모님을 통해 봤던 봉헌을 한 단계 더 심화 시킬 때에 다다랐습니다. 주님의 이 초대에 기꺼이 응하면서 내 자신을 봉헌할 것인가 하고 묻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고 바라는가, 그 안에서 모욕과 비난 그리고 마음과 실제의 모든 가난까지도 참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영신수련의 긴 여정을 걸어오면서 나름대로 주님이신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해 왔습니다. 이제 그 사랑이 결실을 맺고자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비전이 정말 가슴에 사무칩니까? 주님이 보여 주신 사랑에 정말 내 영혼이 떨리며 기쁨과 행복에 찹니까? 그런 주님의 바람과 꿈이 내 가슴 안으로 절절히 스며들어 옵니까? 묻고 있습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199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원 말씀의 집 원장, 서강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순천 예수회영성센터 피정지도 사제로 활동 중이다.

유시찬 신부(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