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세상 책세상] (27) 여전히 종이책이 필요한 이유

김용은 수녀
입력일 2015-03-03 수정일 2015-03-03 발행일 2015-03-08 제 293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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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집중·인내력 쌓는 마음 수련과정
전자책 읽을 때 집중도 떨어져
종이책보다 오답 3배 이상 높아
책장 넘기는 손맛과 여유 즐겨야
요즘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끔은 호기심에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몰래 훔쳐보기도 한다. 대부분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이나 검색을 하지만 간혹 전자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찌나 빠르게 넘기는지 제대로 읽는지 의문이 갈 정도다.

전자책을 읽는 사람의 동공을 추적하다 보면 시선이 뒤죽박죽이고 시선이 아예 가지 않는 곳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래서 빨리 읽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종이책을 읽는 사람의 동공을 따라가자면 시선이 빈틈없이 채워지면서 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읽고 난 후에도 책을 읽은 사람이 훨씬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전자책을 읽은 사람은 전체적인 흐름 정도만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소설을 책으로 읽었을 때와 웹으로 읽었을 때의 차이를 캐나다에서 연구한 사례가 있는데 이 또한 웹에서 읽은 사람들이 제대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답변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이야기 자체보다 하이퍼기능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크린에서 텍스트를 읽을 때는 빨리 읽으려는 경향이 있어 깊은 이해력과 집중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문자에서 의미를 찾는 해독과정에서 멈추어야 의미전달이 된다. 그런데 전자책은 능동적인 의미구성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게 한다. 마치 검색을 하듯이 훑어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에서 연구한 결과를 보더라도 초등학생들에게 종이책과 전자책을 읽고 난 후 결과를 보니 오답이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3배 이상 높게 나왔다. 그만큼 전자책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자책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불과 3~4년 만에 10배 이상 커지고 있고 앞으로 더 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아예 ‘종이책을 없애겠다’고 선언까지 할 정도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올해 전자출판 시장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세워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책을 하나의 지식 덩어리로만 본다면 전자책은 가격도 싸고 가볍고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스마트기기 안에 도서관을 차려도 될 정도이니까.

그러나 책읽기는 단순히 지식을 검색하듯 찾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집중하고 인내하는 수련의 태도가 요구된다. 18세기 읽기혁명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책읽기를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읽는 엄청난 고된 훈련이라고 생각하였다. 독서를 몸과 마음이 온전히 변화할 수 있는 신성한 행위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니까 책읽기는 책 속의 지식이나 정보만을 얻기 위함이 아닌 책장을 넘기면서 멈추고 인내하며 쌓아가는 마음의 수련과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책은 단순히 내용을 담은 그릇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종이책은 시각과 촉각과 연결되어 마음과 몸으로 전달된다. 종이를 만지작거릴 때 느껴지는 손맛, 넘어가는 소리와 향 가득한 냄새, 책갈피 사이에서 흘러넘치는 여유 그리고 책의 무게를 통해 느껴지는 묵직한 고뇌 사이에 흘러오는 만족감이 있다. 이런 평화로움을 전자책에서 얻을 수 있을까?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김용은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