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세상 책세상] (19) 멀티태스킹

김용은 수녀
입력일 2014-11-26 수정일 2014-11-26 발행일 2014-11-30 제 292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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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것’과 ‘보는 것’
음악 들으며 책 읽는 행위
‘느낌’에만 의존하게 만들어
온전히 한 곳에 집중 못해
순간 집중의 독서 태도 중요
아래층 사무실 한편에서 라디오소리가 들려온다. 한 선생님이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읽고 교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에 물었다. “책 읽으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도 들립니까?” 대답은 책에 몰입하는 순간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라디오소리에 몰입하면 책 내용은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라고 묻자 “소리가 없으면 허전하다”고 한다. 조용히 책만 읽고 있으면 뭔가 비어있는 듯하고 시간 낭비하는 느낌이 드나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두 세 가지 일을 함께 하면서 분주하고 꽉 찬 느낌을 즐긴다.

많은 젊은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한다. 심지어 텔레비전 보면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독서하는 사람도 참 많다. 그렇게 해야 효율적이고 더 오래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음악을 듣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책을 잘 읽고는 있는 걸까? 혹시 음악과 텔레비전이 주는 즐거운 느낌과 차를 마시는 행복한 감정, 그리고 그 기분으로 책을 읽는 느낌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사실상 우리의 뇌는 두 가지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다중작업은 뇌를 혹사시키고 피로하게 만든다. 많은 학자들은 이미 멀티태스킹은 불가하다는 것을 여러 실험을 거쳐 보여주었다. 우리가 믿는 다중작업은 그저 순차적이고 연속적으로 빠르게 스위칭하면서 마치 한꺼번에 하고 있다는 착각을 줄 뿐이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다가 독서에 집중하면 음악은 그저 하나의 진동이 된다. 그러다 다시 음악에 몰입하는 순간 책을 읽기보다 보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뇌에 장착된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는 것이다. 외부자극을 즐기는 감각으로 독서를 하면 온전히 한 곳에 집중한다고 볼 수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책에 몰입하도록 감흥을 주는 음악도 있고 소음과 잡담 등을 차단하여 조용한 도피처를 마련해 책에 집중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에 의존하여 만들어내는 이러한 ‘느낌’은 계속적으로 같은 느낌을 요구하고 또 필요하게 만든다. 우리의 뇌는 감정에 의하여 화학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마치 마약에 중독되는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 이런 익숙한 느낌이 강화되면서 음악 없이는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낼 수 없게 한다. 느낌이 행동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벤야민(Walter Benjamin)은 현대인의 지각방식이 관조적 명상에서 기분을 전환하는 오락으로 변화되어간다고 한다. 이는 하나의 자극에 주의를 기울여 의식적으로 감각하는 지각방식이 아닌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자극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시나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글을 낭송하거나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에도 빈 공간을 꽉 채워주는 음악과 영상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지나면 느낌과 분위기에 대한 기억만 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암브로시오 주교가 책에 몰두하여 책장 위로 미끄러져가는 눈빛과 가슴으로 의미를 읽어내는 태도를 보고 위대한 영감을 얻는다.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고 한 가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우리는 성인의 이 조용한 독서태도를 마음에 깊이 담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김용은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