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세상 책세상] (18) ‘소통’의 영성

김용은 수녀
입력일 2014-11-19 수정일 2014-11-19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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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하라
온전히 눈 바라보고 대화할 때
‘함께한다’는 소통 이뤄질 수 있어
미국 칼럼니스트인 수잔 모샤트는 10대의 세 자녀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포함한 자녀들이 디지털기기에 심각하게 중독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각자 스크린만 바라보고 꼼짝하지 않고, 틈만 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래서 어느 날 자녀들에게 6개월 동안 ‘스크린 금지’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전포고를 하고야만다. 그런데 첫 번째 변화가 다름 아닌 ‘서로 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는 세상에 살아야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공원에서 거리에서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웃는 소리가 더 크게 자주 퍼지지 않을까싶다. 그리고 사전이나 책을 들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펼치지 않을까? 무엇보다 대화할 때 눈을 마주하고 소통할 것이다. 그리하여 눈빛만으로도 깊은 내면의 마음을 알아채는 능력이 커가지 않을까?

언젠가 한 그룹원들에게 “눈을 마주하고 가족과 대화하라”는 과제를 준적이 있다. 대화할 때의 조건은 다른 일을 하면서 대화하면 안 되고 온전히 상대에게만 단 10분이라도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10명중 단 한명도 그 과제를 제대로 이행한 사람이 없었다. 어떤 자매는 남편과 대화하려고 시도했지만 기회를 찾지 못해 운전하면서 했다고 한다. 그 부부는 결국 눈을 마주 보지는 못했다. 어떤 자매는 딸과 대화하려 했지만 계속 서로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는 탓에 실패했다고 한다. 물론 그중 한사람은 잠깐의 시도였지만 눈을 바라보는 순간에 아이와의 특별한 교감을 느꼈다고 한다.

얼마 전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부모자녀간의 하루 대화시간이 30분도 안 된다고 한다. 그나마 대화내용이 학습에 관한 것이라며 아이들은 불평한다. 그리고 많은 부부들이 하루 10분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도 놀랍다. 바빠서, 싸울까봐, 그리고 말이 안 통해서라고 한다. 심지어 어떤 부부는 다퉜다하면 화가 풀릴 때까지 ‘문자’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 의하면 주 4회 이상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는 가족이 그렇지 않은 가족보다 2배 이상 삶의 만족도가 높고 사회적응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결국 행복한 가정은 ‘소통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 셈이다.

행복의 조건은 ‘관계’이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소통’이다. 소통은 단순히 ‘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소년의 아버지인 돈보스코는 “사랑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라”고 한다.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 바로 ‘소통’이다.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여 눈을 바라보고 대화할 때 ‘나는 온전히 너와 함께한다’는 사랑고백이 된다.

점점 마주하지 않고 소통하는 시대, 소통은 넘치지만 소통은 없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소통하지만 매일 만나는 가족과의 소통은 어떠한가? 오늘부터 단 10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소통하면 어떨까? 그러다보면 눈빛 속에 담긴 순수한 언어로 대화하게 되면서 어느새 서로의 빛나는 영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김용은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