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기고] 대구대교구 김호균 신부 파키스탄 파견기

김호균 신부(파키스탄 파이살라바드교구 파견)
입력일 2014-03-11 수정일 2014-03-11 발행일 2014-03-16 제 288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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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그들이 있기에 떠납니다”
지난해 1월 파키스탄을 방문한 김호균 신부 모습. 김 신부는 파키스탄에서 “삶을 통해 예수님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 파이살라바드교구로 파견된 김호균 신부가 지난 12일 한국을 떠나며 본지에 특별히 기고문을 보내왔다. “낮은 곳에, 변두리에 그들이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간다”고 선교에 임하는 자세를 밝힌 김 신부의 각오를 들어본다.

Flying

원고가 인쇄된 지금, 저는 하늘을 날고 있을지 모릅니다. 예전에 영화 포스터 ‘흐르는 강물처럼’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포스터 한 장에 영화줄거리 전체가 고스란히 담긴 포스터였습니다. 꼬인 S자로 그려진 낚싯줄이 참 멋있었습니다. 그 끝에 매달린 낚시 바늘 역시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땅을 디디고 사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하늘로 올라가야할 영혼이기를 그리워하며 ‘운명처럼’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지 모릅니다.

Pakistan?

신부로 살아가면서 해외서 활동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본당신부로 마감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었습니다. 본당에서 교우분들과 함께 가꾸어갔던 순간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본당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에 출신본당 후배가 운명처럼 들려준 파키스탄 여행기는 저에게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야 할 알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파키스탄에도 성당이 있어?”

후배신부가 파키스탄에 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우연이었습니다. 파키스탄 무슬림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받은 상황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같은 병실에 있던 후배신부의 형이 산재를 입은 파키스탄 노동자의 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귀국한 후에 그는 후배신부의 가족들을 초대하였고,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성당까지 안내해 주었던 것입니다.

후배는 파키스탄을 다녀온 후 그 나라의 가톨릭 신앙인들의 어려운 현실을 들려주었습니다. 97%의 무슬림들과 살아가야하는 소수의 그리스도교인들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무슬림에 편입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장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간다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2개의 대교구 속에 5개의 교구와 교황청 직속구 1개로 80여 만 명의 신자가 있다는 것 또한 저에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고.”

Why

신부로 살아가면서 마음 한 켠에 늘 빚처럼 지니고 산 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마태 25,37)

사실 신부로 산다고 하면서 언제 그 말씀을 실천했던지 기억이 나지 않을뿐더러 설령 기회가 있더라도 모른 척 외면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내 자신이 하지 않으면서 교우분들에게 강요했던 것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남의 지갑을 쳐다본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또 다른 이유는 밤늦게 홀로 성당 감실 앞에서 기도할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에 답사를 다녀온 뒤 기도를 하면서 서서히 밀려오는 질문.

“신부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예수님이 겪으셨던 고난과 희생, 모욕의 과정은 없고, 오직 독선과 취미, 칭찬에 도취된 삶의 연장이 ‘과연 내가 걷고자 한 길이었던가?’에 대한 되물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본당을 떠나면서 위험한 곳으로 가는 신부를 걱정하는 신자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습니다.

“행복했었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How

사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어지는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생소한 곳의 신비로움과 위험한 곳의 걱정스러움이 교차하는 곳이기에 예단할 수 있는 삶이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풍습과 문화, 제도, 종교를 존중해야하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무슬림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킨다는 선동적 선교가 아니라 제 삶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과 함께 살아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어렵게 길이 열렸고, 앞으로도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한국에서 로만칼라를 하고 길에 나선다는 것은 존경의 대상이지만 그곳에서 로만칼라를 하고 길에 나선다는 것은 비아냥과 테러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낮은 곳에, 변두리에 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개월이 될 수도, 몇 십 년이 될 수도 있는 그 길을 떠납니다.

“운명처럼”

김호균 신부(파키스탄 파이살라바드교구 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