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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내운명] 서울 천호동본당 신자들의 율곡부대 방문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3-06-18 수정일 2013-06-18 발행일 2013-06-23 제 285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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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철통같이 지켜내는 최전방
“우리가 누리는 평화, 누군가의 희생에서 비롯”
신자들 응원 군장병에 큰 힘 … 지속적 관심 절실
그야말로 ‘최전방’ 중에서도 최전방이다.

155마일 휴전선은 물론이고, 지금도 아찔한 포격사건의 상흔을 안은 연평도나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보다도 북쪽에 위치한 육군 제22사단 율곡부대.

우리나라에서 해안경계와 GOP경계를 동시에 맡고 있는 유일한 부대인 율곡부대는 3·8선에서도 북쪽으로 80㎞나 전방에 자리한 곳이어서 육로로 금강산을 갈 때에도 꼭 거쳐야만 하는 최전선에서 북한과 맞닿아 있다.

13일 오후, 맨눈으로도 500여m 지척에 있는 북한군 GP(Guard Post·군사분계선과 남·북방한계선 안에 위치한 경계초소)에서 인민군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율곡부대 717OP(Observation Post·관측소)에서는 탄식이 이어졌다.

북한군 GP 너머로 한반도 최고의 절경이라고 하는 금강산 비로봉과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 광경을 바라보던 30여 신자들의 표정에서는 하나같이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났다.

13일부터 이틀간 율곡부대에서 이뤄진 종교계 지도자 부대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울대교구 천호동본당(주임 이성운 신부) 신자들은 처음 접하는 이야기들이 군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탄성을 쏟아냈다. 6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분단의 땅을 눈앞에 둔 신자들은 겨레의 아픔과 전쟁의 상흔을 되새기며, 평화와 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 새로운 눈을 뜨다

최전방을 찾은 신자들은 첫날 22사단 사령부 방문을 시작으로 율곡부대 소속 전차대대와 포병대대 등을 견학하며 우리나라 안보 현실 등에 새로운 눈을 떠갔다.

일행을 맞이한 포병대대장 곽철오(로사리오) 중령은 “군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준다는 것 자체가 군인들에게는 큰 기쁨이고 격려”라며 “직접 눈으로 보았듯이 우리나라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군을 믿고 편안히 지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각종 군 장비의 시연 장면을 참관하고 직접 조작해보기도 하면서 모처럼 ‘진하게’ 군을 체험하며 군 후원 의지를 다졌다.

윤규림(바오로·74)씨는 “오래 전 군 생활을 했지만 처음 대하는 안보 현실이나 군 상황을 보며 통일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면서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적지 않을 군 장병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공군 예비역 중령 방효선(비오·69)씨는 “여태껏 알지 못하고 지내왔던 엄혹한 현실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새삼 깨닫고,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 은밀하게 위대하게

최전방의 국군 장병들은 후방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어려움 속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 여름이면 햇볕에 뜨겁게 달아오른 철모 때문에 탈모로 고생하는 장병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섭씨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한겨울에 무심코 맨손으로 총을 잡았다가는 손이 총에 달라붙어 고생을 하기도 한다.

가장 힘든 훈련 가운데 하나가 추운 겨울에 하는 ‘혹한기 훈련’이다. 더구나 율곡부대가 위치한 강원도 고성지역에서는 추울 때 영하 20도는 우습게 내려간다. 말이 영하 20도지 바람까지 불면 뼛속까지 시릴 정도다. 이 때문에 관리를 조금만 잘못하면 손이나 발, 귀 등이 쉽게 동상에 걸릴 수 있어 일선 지휘관들은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니다.

율곡부대 군종행정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경배(베드로·46·군종교구 육군 동해본당) 원사는 “마지막 교육의 장이 군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전방 체험 등을 통해 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지닐 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도 한층 새롭게 다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군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육체적 고통보다 세상과 격리돼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고립감과 외로움이다. 특히나 철책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GOP 경계부대 병사들은 더 마음이 지치기 쉽다.

이런 까닭에 장병들에게 내적 평화를 주는 주님의 집은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된다. 먼저 다가가 마음을 나눈 군종신부의 격려 한 마디에 제 발로 성당을 찾아오는 병사들이 부지기수다.

율곡부대를 담당하는 유충현 신부(군종교구 육군 동해본당 주임)는 “최전방인 이곳에 와서 보니 한쪽 귀를 닫고 살았음을 알게 됐다”면서 “많은 이들이 기도해주고 함께 해주고 있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군 장병들이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신부는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형제가 하는 사목을 바라보면서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전방 체험을 통해 그간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것을 바라보고, 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며 군사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당부했다.

■ 새롭게 발견한 소명

모든 삶터는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현장이다. 특히나 일선 군 선교 현장에서 목자 역할을 하고 있는 군종신부의 발걸음이 닿는 군부대는 그때그때 성소로 거듭난다.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이기에 군종신부는 갖은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군인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닌다.

군종신부로 20년 간 군사목 현장에서 뛰며 선교의 지평을 넓혀온 경험을 지닌 이성운 신부(서울 천호동본당 주임)는 “군종신부는 다른 사목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제들보다 몇 배나 어렵고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 주님의 일꾼들”이라며 “우리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노력하면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 보여주신다”며 군사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두 자녀를 둔 최정아(아녜스·40)씨는 “군이라는 데를 처음 와봤는데 직접 와서 보니 피부로 와닿는 게 다르다”며 “많은 청소년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분단 현실을 돌아보고 평화의 사도로 거듭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천호동본당 사목회 정문교(베드로·59) 회장은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소중한 경험을 통해 인식과 사랑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군과 군사목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함께할 수 있는 몫을 고민하는 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종교계 지도자 부대 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최전방 체험에 나선 서울 천호동본당 신자들이 율곡부대 소속 전차대대를 둘러보고 있다.
율곡부대 소속 포병대대를 찾은 신자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통일전망대를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부대 방문 참가자들.
717OP에서 안보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 모습.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