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84) 하느님 뜻과의 조화 (48)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입력일 2013-02-19 수정일 2013-02-19 발행일 2013-02-24 제 283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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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순명·참 자유·참 합치의 맛 느끼기
주위의 도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주님 뜻 순명하면 참으로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어
인간은 참으로 교만하다. 지금 내 손에 돈 100만 원을 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뿐 아니다. 내 능력이 뛰어나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인생도 내가 잘나서 잘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주위에서 자신을 조금만 인정해 주지 않아도 화를 내고 반발한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질투하고 모함한다. 오직 자신이 제일 뛰어나다고 착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고도 “너는 능력이 부족했고, 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변명한다. 불쌍하다.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참 인간으로 참 행복을 느끼며 살려면 이러한 ‘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참 인간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순명을 향하도록 창조됐다.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복종하도록 불림 받았다. 그런데도 순명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인간 본질을 거스르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라. 나는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주위 사람의 도움, 그리고 대자연과 하느님이 계시지 않으면 잠시도 살 수 없다. 이것이 인간 본질이다. 주위의 도움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인간이라면 자연에 순명하고, 주위 사람을 받들고,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자연에 순명하지 않고, 주위 사람을 받들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으면 참 인간이 될 수 없다.

죽을 때 아무리 죽지 않으려고 해도 죽지 않을 수 있는가. 탄생은 물론 죽음 자체가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하느님께 순명을 거스를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 본성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나를 창조해 주신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순명하는 자세에서 하느님께 합치해야 한다.

그런데 반 형성적 사람은 합치하지 않는다. 거역한다. 모든 대 우주의 자연 질서가 하느님의 뜻에 의해 되어 있는데 그것에 순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고개 숙이고 살라는 말이 아니다. 순명은 자신감의 다른 말이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그 뜻을 알고 그 뜻에 순명할 때 우리는 참으로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이야말로 순명하며 살았기에 가장 자신 있고 담대하게 살았다. 하느님께 순명했으니까 하느님의 뜻을 살았으니까 용기 있게 복음을 선포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명 안에서 승화된 자신감이 없다면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자신감 없이 사는 것이다.

성모님의 신앙이 위대한 것은 순명 때문이다. 특히 자유의지 속에서의 순명이기에 위대하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를 선물 받았다. 이 자유가 잘 사용되어야 한다. 내 몸 하나 살찌우는데, 내 지식 조금 더 쌓기 위해 사용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다. 이웃을 질투하고 모함하고, 나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다.

자유는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을 위해 사용될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수박 겉만 핥는다면 수박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의 겉만 대부분 핥고 있다. 하느님도 모르면서 하느님을 안다고 한다. “주님! 주님!” 부른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 순명, 참 자유, 참 합치의 맛을 느껴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것들의 참맛도 느끼지 못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우기며 싸우는 이들이 많다.

깊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유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터득하는데 사용돼야 한다. 자유의지로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옆에서 손을 잡아 주실 것이다.

성경의 비유를 빌려서 말하자면 좀 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쳐야 한다. 그동안 정신적 차원에서 알고 있는, 눈으로 봐온 경험해온 그런 것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내가 경력 20년의 어부야!”라는 말은 구원에 방해만 될 뿐이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의심 없이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쳐야 한다. 그 깊은 곳에 드리워진 그물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보물이 바로 순명이다.

그 깊은 곳에서 순명을 깨닫게 되면 인간은 하느님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게 된다. 자신 있게 매사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엄청나게 큰 힘도 받게 된다.

하느님은 콜록콜록 기침하는 힘없는 노인이 아니시다. ‘하루살이’처럼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그런 분도 아니시다. 하느님은 ‘영원 살이’시다. 내가 존재하는 그 어느 곳이나, 그 어느 시간이나 함께 계시는 정말 대단한 분이다. 그분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참 행복이고 참 자아를 깨닫는 것이다. 그때 인생이 새롭게 펼쳐지게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