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위령성월 특집] 올바른 장례 문화를 위해서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2-10-31 수정일 2012-10-31 발행일 2012-11-04 제 2818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기관, 바람직한 장례 문화의 구심점 돼야 
화장률 급증함에도 납골당 등의 설치 기피
‘삶-죽음 하나’ 인식 가져야 … 교육 등 필요
10월 26일자로 설치 허가 필증을 부여 받은 서울 구파발본당의 봉안당 모습. 주임 정민수 신부가 봉안당을 둘러보고 있다.
한국 장례 문화의 큰 흐름이 화장(火葬) 문화로 바뀌고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25만 7369명 중 71%인 18만 2946명이 화장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 국민의 화장률이 처음으로 70%를 넘어선 것이다. 이는 2010년 화장률(67.5%)보다 3.6% 포인트 올라간 수치이며, 10년 전인 2001년(38.3%)과 비교할 때는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앞으로도 인구 고령화, 핵가족화 확산 등의 영향으로 화장을 선택하는 이들은 계속 늘어날 추세다.

■ 혐오시설의 잣대

10명 중 7명이 화장을 선택하는 시대인 만큼 충분한 납골당 설치는 필요 불가결한 상황이다. 그러나 화장장 시설과 봉안당 시설은 태부족이다.

대도시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처지. 2008년 기준으로 볼 때 봉안 능력 대비 봉안 수 비율은 부산이 93%, 서울 92%, 광주 74%, 인천 54% 등으로 전국 평균(27%)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런 실태임에도 대다수 신규 납골당 설립 계획은 “내가 사는 지역에는 ‘혐오시설’인 납골당이 들어서면 안 된다”는 님비(NIMBY)현상으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거나 설립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의 납골당 설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시 외곽에 자리 잡은 교구 묘원들과 달리, 도심 납골당들의 경우는 민원 제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신중한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학교 인근 200m 내에는 화장장 또는 납골 시설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한 ‘학교 보건법’은 납골 시설의 부정적 인식을 가중시키는 요건이 되면서 도심 본당들의 납골당 설치를 막는 법적 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서울대교구 T 본당의 납골당 설치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학교 주변의 납골당 설치를 금지한 학교보건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보였다. 당시 재판부는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시신이나 무덤을 기피하는 풍토와 정서를 가지고 살아왔다”면서 “그러한 풍토와 정서가 과학적 합리성이 없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정서 발달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이상, 규제해야 할 필요성과 공익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교구는 2009년 7월 31일 “사망한 사람의 시신이나 무덤을 기피하는 풍토와 정서가 우리 사회의 전통이었다 하더라도, 그 전통이 앞으로 계속 보호돼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히 의심스럽다”며 “납골 시설의 확충은 원하면서도 우리 마을, 내 집 앞 설치는 반대하는 님비현상이야말로 자라나는 청소년의 가치관 형성에 큰 해가 될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10월 26일자로 봉안당(성요셉관) 설치 허가 필증을 관할 관청(은평구)으로부터 부여 받은 서울 구파발본당(주임 정민수 신부)의 경우도 학교 인근 200m 내에는 화장장 또는 납골 시설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한 학교 보건법으로 봉안당 사용에 다소 시간이 걸린 사례다.

관할 관청은 인근에 신축될 유치원 건물과 성당이 200m 반경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지역민들의 ‘혐오시설’ 민원 제기를 우려, 심사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실제 봉안당은 성당 건물 안쪽 제대 뒤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실거리 면에서는 200m를 벗어나 있던 상황이었고 구청에서도 이 같은 심사 결과를 토대로 하자없음을 인정하게 됐다.

이로써 구파발본당은 그간 지연됐던 봉안당 사용권 계약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됐고, 본당 신자들도 “훗날 평소 적을 두었던 본당 제대 가까이에 묻히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됐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정민수 신부는 “삶과 죽음을 한 연장 선상에 두고 죽음에 대해 자연스런 인식을 심는 종교시설 내 납골당 설치의 의미를 청소년들의 정서를 해치는 것으로 두는 것은 독소 조항이 아닐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 죽음에 대한 인식 전환 절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화장’, ‘납골당’은 왜 혐오스런 상황으로 대두되는 것일까. 이명숙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한 잡지에 발표한 기고문 ‘교회와 장례문화’에 따르면, 일제 치하를 거치며 지역 몇몇 곳에 화장장이 설치돼 가난한 이들과 전염병이나 결핵으로 사망한 시신들을 화장하게 됐고 이를 강제로 서민의 장법으로 처리하면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시설 미흡으로 분진과 악취로 혐오감을 주었던 탓에 오늘날까지 화장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기에 역부족인 현상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화장이나 납골당에 대한 혐오 현상, 더 나아가 지역 내 납골 시설 설치를 막는 모습들이 죽음에 대한 기피와 두려움, 미신적 사고와 함께 생겨난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극단적 이기주의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윤리신학자 김정우 신부(대구가톨릭대 대신학원장)는 “한국사회에서 죽음을 기피하는 현상은 현실에 집중된 물질 문화에서 생겨난 삶과 죽음의 분리적 생각에서 연유된 것”이라며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올바른 죽음관이 형성될 때 화장 납골묘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교회 안에서부터 “산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 죽음은 삶의 자연적인 현상이며 ‘아직’이 아니라 이미 벌써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다”라는 생각 하에 “죽음에 대한 묵상과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겸손을 배우는 올바른 교육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모아지고 있다.

■ 교회가 장례문화 선도해야

이런 가운데 지역 본당들을 위시한 교회 기관들이 바람직한 장례 문화 선도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 본당들이 소규모 차원의 본당 내 납골당 설치를 활성화시켜서 상례 문화를 이끌어야 나가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법적으로 유해 봉안소 설치가 가능한 본당들이 성당 내 공간 벽면을 활용하거나 별도의 소성당처럼 리모델링을 하는 방법으로 500~700기 규모의 소규모 납골당을 마련한다면 신자들의 고인에 대한 추모와 유족들의 기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도심 지역 본당이 아름다운 상례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구미 여러 국가들의 경우 도심 내부나 교회에 납골 시설을 설치하면서 이를 공원화하여 죽은 자들의 공간을 살아있는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 되도록 설계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 이는 자연스레 삶과 죽음이 공존하며 일상의 휴식과 영원한 휴식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정민수 신부는 “서구교회의 예처럼 도심 본당들의 납골당 설치에 대한 관심은 일상 삶의 한 부분인 종교 생활을 통해 죽음에 대한 자연스런 인식과 올바른 자세를 심어 준다는 면에서 장례문화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좋은 방안일 수 있다”고 밝혔다.

◆ 기고 - 전기성(한양대학교 조례클리닉 센터장·보건복지부 장사정책포럼위원장) 위원장

“신앙의 해, 위령성월에 바치는 위령기도”

전기성 위원장
■ 예수님 무덤 안에서 바친 위령기도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와서 그분께서 누워계셨던 곳을 보아라.’(마태 28,6)

2000년 대희년 5월 24일 새벽. 나와 아내는 예루살렘 성지순례 기간 중 예수님 무덤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 앞줄에 섰다. 무덤묘실은 사제 2명이 미사를 집전하는 좁은 공간인데 신부님이 갑자기 우리 부부를 묘실로 들어오라고 한다. 무덤 앞 미사참례도 은총인데 묘실 안에서 올리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감격에 겨워 돌아가신 부모님과 은인들을 위한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고 미사 후에도 묘실 밖 도유석(예수님 시신을 염하고 향유를 뿌렸다는 돌)에 엎드려 ‘당신의 은총이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시편 63,4)를 읊어댔다. 지금껏 그렇게 진지한 기도를 한 적은 없다고 기억된다. 올해는 신앙의 해 기간에 위령성월이 겹쳐 있어 이 기간 중에 지정된 성지를 방문하고 기도를 바치면 전대사를 받는다. 대희년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정문을 지나며 전대사를 기도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 위령기도, 스스로 정화 못하는 연옥영혼을 도와주는 것

11월은 위령성월이며 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날인 2일은 위령의 날이다. 998년 프랑스의 클뤼니 수도원 5대 원장인 오딜로(Odilo)가 위령의 날로 지내도록 한 것이 유래라고 한다. 교회는 11월 1~8일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 방문과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하면 연옥의 죽은 이들에게 양도되는 전대사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세례 받은 신자들의 죄는 고해성사로 사해지고 잠벌은 보속을 통해 탕감된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위해 치러야 할 보속은 연옥에서 치르는데 연옥영혼들은 스스로 정화할 힘이 없어 살아있는 이들의 위령기도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에 더해 교리는 산 자와 죽은 이가 그리스도 공동체 안의 지체들로서 산자가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으며 이미 하늘나라에 들어간 성인들도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결국 크고 화려한 장례식장과 값비싼 수의나 관을 사용하고 생전 보지 못한 캐딜락과 호화분묘에 안치한다고 죽은 영혼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산 사람들의 자기과시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가족, 교회 공동체와 동떨어진 먼 곳의 장례식장과 산 속 묘지를 찾아가야 하는 지금의 장례문화가 위령기도를 바치는데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의 결단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는 안장 후 20년이 넘은 사제의 분묘 20기의 유해를 화장해 열분 묘를 1기에 이장하며 앞으로도 계속한다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장사법에 최장 60년간 매장할 수 있다는 제한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 분들인데 묘지 부족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이른바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예수님 제자들의 위대한 결단이다. 내년 한식 때 이장한다니 장례 문화 개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크게 감사하며 다른 교구와 평신도들도 따르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장사시설이 대표적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수시로 찾아가 위령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교회시설이나 가까운 곳에 설치할 수 있도록 잘못된 법과 정책, 국민의식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위령성월을 앞선 ‘신앙의 해’ 선포가 장묘 문화 개혁을 통해 교회와 나라의 쇄신을 구하는 절묘한 계시로 보는 것은 결코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