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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경의 반투명 인생노트 (45·끝) 진리를 실천하는 삶

성찬경 (시인·예술원 회원)
입력일 2012-03-20 수정일 2012-03-20 발행일 2012-03-25 제 278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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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일하고 진실을 말하며
사물을 정확히 판단하고 싶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진리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진리 근처에만 가도 우리에게 오는 혜택과 복락(福樂)이 클 것이다.

그런데 진리란 그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좋은 것이다. 그러니만큼 진리에 접근할 때는 조심해야지 조심 안 했다가는 감당이 되지 않아 해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진리를 실천하는 삶, 이것이 진리의 삶이다. 그런데 진리의 삶에는 초보적인 단계에서부터 숭고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 등급이 천차만별이다. 예수님의 12사도나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같이 숭고한 분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처럼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친 분들의 삶은 수(壽) 따위의 문제를 뛰어넘는 까마득한 경지의 진리의 삶일 것이다. 하나 이런 높은 단계와도 비교를 잘하는 진리의 삶을 실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런데 이러한 높은 단계의 진리의 삶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의 그릇과 능력이 그만 해야지, 그릇도 안 되는 자가 허영심에서 그런 일을 꿈꾸었다가는 도리어 크게 낭패를 당하는 결과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대로 말씀드려서 나도 진리의 삶을 꿈꾸곤 한다. 그런데 내가 실천 가능한 것으로 꿈꾸는 진리의 삶이란 순교자 같은 특별한 경우는 물론 아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나는 게으름 피우는 것보다는 부지런히 일하는 꾸준한 사람이 되고 싶다. 거짓말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련하게 사물을 잘못 판단하기보다는 바로 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싶다.

나는 한 줄이라도 더 좋은 시구(詩句)를 쓰고 싶다. 이것이 한 발짝이라도 진리 쪽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되도록 과욕은 삼가고, 과식·과음을 하기보다는 배고픈 것을 견디는 쪽을 택하도록 하고 싶다. 아니 배고픈 상태를 즐길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이제 다 드러난 셈이지만, 내가 지향하는 진리의 삶이란 위를 바라보며 약간 더 노력하는 삶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런 정도를 가지고 ‘진리의 삶’이란 어마어마한 포장지로 포장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나는 솔직히 시인한다.

약간의 극기가 필요한 이런 생활이 사람의 수명에 나쁜 영향을 끼칠 리가 없다. 과식보다는 소식이 건강에 좋을 것은 뻔하고, 무리하게 돈 벌려고 애쓰는 경우보다는 주변머리 없이 약간 쪼들리며 사는 편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벗어나게 해줄 것이고, 그리하여 이런 생활이 무병장수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나의 진리의 삶은 결국 나의 기복신앙적 생활 철학과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20세기, 21세기의 현대문명의 주류는 틀림없이 ‘반(反) 진리의 삶’ 쪽이다. 정신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물질을 지나치게 섬긴다. 물질만능주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시대다.

막스 피카드는 현대를 신으로부터의 ‘도주의 시대’라 정의(定義)했다. 현대는 반(反)진리의 삶 쪽으로 끌고가려는 유혹이 너무 많다.

「논어」에 ‘인자수(仁者壽)’라는 말이 나온다. 참으로 운치 있고 뜻이 깊은 말이다. 어진 사람이 정적(靜的)으로 조심조심 살아간다면 수(壽)를 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그동안 저의 글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성찬경 (시인·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