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부살롱] 죽음과 부활 그리고 삐삐/이선희

이선희·서울 대치동본당
입력일 2011-05-03 수정일 2011-05-03 발행일 1981-04-12 제 125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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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작은 아이가 사온 병아리에게 큰 아이가 삐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후로 삐삐는 우리집 세째 아이가 된 모양 온 집안의 인기를 독차지 하였다. 그 작은 몸집과 가냘픈 다리를 가지고 온종일 사람뒤만 쫓아 다니고 있다.

방바닥에다 모이를 주어야 된다는 아이들의 북새통에다 삐삐가 여기저기 더러운 것을 갈겨놓는 바람에 그놈이 귀찮아진 참에, 설겆이를 하다가 내 긴 치마 밑에 숨어있던 그 놈을 모르고 밟아 버릴뻔 하던 순간 나는 언뜻 부활달걀 속에서 빠꼼히 고개를 내민 병아리를 생각했다고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을 생각했다.

그 모진 추위를 보내고도 봄은 우리곁에 와있지 않는가. 그 작은 삐삐가 커서 어미닭(암놈이었다)이 될런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삐삐는 지금도 열심히 모이를 줏어 먹고 있다.

그리고 목청껏 소리높여 삐약거리고 있다. 그 삐삐의 모습에서 나는 예쁘게 채색된 부활 댤걀을 보는 듯 했다.

알에서 부화 되어 병아리로 태어나듯,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 무엇으로 이어져 있는 것인가. 오리와 동산에서의 40일. 단식과 극기, 피땀어린 기도와 마귀의 유혹, 참혹한 십자가 상의 처절한 상처.

그 모든 것을 치루어 내신후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 「그 모든것」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엔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 무엇이 주님의 부활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인가. 이제 예수님이 치루어 내셨던 그 모든 것이 밀물처럼 우리에게 다가 오고있다.

주님의 부활에 감격하기 전에 나는 그분 죽음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본다. 부활절을 맞으며 나는 참으로 통회하고 보속하며 마음으로부터 죽음을 준비해야 함을 느낀다. 믿음과 진실을 다하여 깨닫지 않는다면 부활을 맞이하는 기쁨이 우리에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따사로운 봄별속에서 즐겁게 어울리고 있는 아이들과 삐삐를 바라보았다.

평화스런 향기가 스며든 듯, 모두 예쁜 모습들이 다 화분의 스킨다이브스 잎들이 싱싱하고 힘차게 그 줄기를 뻗어가고 있다. 조금 있으면 얼었던 땅을 헤집고 새싹이 돋아 나올 것이다. 지리한 경루 외투를 벗어 버리듯, 우리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벗어버리자. 나는 저녁 식탁에서 아이들에게 어저면 삐삐가 어미닭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별러오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잠시후 아이들은 그래도 생명은 중요하지 않느냐고 입을 모으더니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큰 아이가「엄마 나 삐삐가 죽으면 묻어 줄 곳을 보아 놓았어요」한다. 정말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인가.

이선희·서울 대치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