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부살롱] 망자에게 주의 평화를…/정영재

정영재ㆍ부산진구 가야2동500~4
입력일 2011-05-02 수정일 2011-05-02 발행일 1980-07-13 제 121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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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신지 1년이 넘었다. 아버님은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지셔서 닷새 만에 운명하셨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죄송스럽기 한이 없다

몇 대를 내려온 구교우 집안에서 시집온 며느리를 두시고도 대세도 못 받으시고 그냥 운명하셨으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결혼5년 동안 난 마음으로는 언제나 입교를 권면하리라 마음먹었었지만 한 번도 아버님께 입교를 권면하지 못했다.

분가해서 살고 있어 1년에 한두 번 가는 시댁에서 뵙는 아버님이 어렵고, 그리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종교를 탐탁히 여기시지 않는 유교 사상이 철저하신 분이었다.

그이와 나의 결혼 말이 났을 때도 아버님은 우리 집안과 내가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로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셨고 성당에서 하기로 한 결혼식이 못마땅하셔서 결혼식 날 아침에 식장에 가지 않으시겠다고 해서 집안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교회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선 나대로 교회 다니는 사람이 어떻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한 덕인지 많이 달라지시고 곱지 않던 며느리도 예쁘게 봐주셨다.

그리고 아버님은 한 번도 성당에 가지 말라든지 나가라든지 그런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3년 전에도 고혈압으로 약6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계신 적이 있었다.

처음 보름 동안은 완전히 혼수상태에서 몇 번의 위기를 넘기셨으나 차차 회복이 되셨다.

난 그때 병상을 지키며 대세를 부칠까 말까하고 고민했으나 일가친척이 모두의 교인인데다 아버님의 뜻을 몰라서 망설이고만 있었다.

다행히 차츰 회복되신 아버님은 어느 일요일 약시중을 들고 있는 나에게 『오늘이 며칠』이며『무슨 요일』이냐고 물으셨다.『일요일』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뜻밖에도 아버님은 성당에 안가도 되느냐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난 귀를 의심하고『성당에 다녀와도 되겠읍니까』하고 다시 여쭈었더니『내 마음대로 해라』하시며 웃으셨다.

그러나 난 그 후 3년이 지나도록 아버님께 하느님에 대한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미루어만 오다가 갑자기 아버님의 우독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 운명하시고 하루가 지난 후였다.

지금도 귀에 쟁쟁한『얘야! 교회에 안가도 되느냐』하시던 그 말씀이 자꾸만 가슴을 찌른다.

이 잘못을 누구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주여 망자에게 길이 평안함을 주소서. 영원한 빛이 저에게 비치어 지이다」

정영재ㆍ부산진구 가야2동5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