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달자의 주일 오후] 무명의 성인들을 위하여

입력일 2009-11-25 수정일 2009-11-25 발행일 2009-11-29 제 267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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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럴 것이다. 역사 속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성인들이 계실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지난 우리 교회사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며 끝까지 하느님을 증거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중에는 빛나게 이름을 떨쳐 오늘날 책자 속에서도 만날 수 있는 분들이 계시다. 그러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기억도 없이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 간 성인들도 계실 것이다. 나는 지금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한 그분들을 생각한다. 오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생을 마감한,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묵묵히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을 끝낸 분들 말이다.

그 무명의 성인들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깊이 사랑한 분들이었다.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보여 준 분들이다. 요즈음 흔하게 거리와 도시를 휩쓸고 다니는 사랑이란 단어를 완전하게 몸으로 실천한 분들이다.

우리들은 그런다. 내 사랑을 상대가 얼마나 알아주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온갖 회유와 의심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되돌려 받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이만큼 사랑하는데, 너는 왜 요만큼밖에 사랑하지 않느냐’며 사랑의 대답을 얻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것이 내 사랑의 역사요 줄거리였다. 그래서 내 사랑에는 늘 진저리 나는 고뇌와 상처가 따랐다.

오로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사랑의 응답조차 기대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자신의 목숨을 바쳐 예수님만을 사랑한 무명의 성인들을 나는 지금 가슴 떨리는 눈물 속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 어쩌면 우리들도 성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직 사랑할 수만 있다면, 깊이 사랑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홀로 뜨겁게 사랑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날 스스로 아집과 독선, 이기심에 갇혀 가시투성이의 사랑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 사랑이 가장 정결하고 아름답다고 자부한곤 했었다. 그러나 나처럼 주고받는 것만 열심히 셈하거나, 나를 살피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만 살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내 마음에 피어오르는 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용서해야 한다. 사랑은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에는 힘이 필요하다. 바로 노력하는 힘이다. 그 힘은 사랑에 대해 따지거나 불신을 제거해준다.

성인들의 사랑은 고통 속에서도 사랑 그 자체만을 생각하며 오직 한분인 그분께 바치는 사랑이었다. 성인은 창조된 분들이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이끌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사랑과 바꾼 분들이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 용서할 수 있는가. 계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상대방은 바로 쳐다보지도 않는데 자신만 바라보며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들의 이기적인 기도까지 다 들어주시고 안아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죽을 때까지 우리만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이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들의 마음을 훈훈하고 뜨겁게 꽉 채우시는 사랑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도둑도 훔쳐갈 수 없는 사랑이다.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사랑이란 그 큰 선물을 받았다. 이것보다 이 세상에 더 큰 선물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처럼, 그래서 우리는 씩씩하고 용감하고 떳떳하게 신이 나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도 그런 사랑이 필요하다. 주님을 위한 성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