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달자의 주일 오후] 웃는 시, 웃음을 주는 시

입력일 2009-10-21 수정일 2009-10-21 발행일 2009-10-25 제 2669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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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매년 3월경 일주일 정도 ‘시인들의 봄 축제’란 행사가 열린다. 1999년 자크 랑 전 교육부장관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이 축제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프랑스의 새로운 문화명물이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에는 시가 적힌 애드벌룬이 떠다니고, 버스에서도 시를 만날 수 있다.

프랑스란 나라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작전개시를 알리는 암호로 폴 베를렌의 시를 이용할 정도로 시에 대한 애착이 크다. 어린 시절 ‘아버지’, ‘어머니’란 글자를 배우기 전에 시 암송을 시키는 나라가 프랑스다. 거리에서 중년의 사람을 불러 세우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시 열 개쯤은 쉽게 암송한다. 또 밤새도록 문학작품만을 읽어주는 방송도 있다.

프랑스는 지난 제11회 축제 때 ‘웃음이 있는 시’란 주제로 최근 경제위기를 겪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우리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낭독의 기쁨을 전국에 전하는 축제를 열고 있다. 이에 대한 장관의 의지가 뜨겁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시가 반드시 엄숙하고 진지하며 골치 아픈 것만은 아니다. 인간애가 살아나고 본능적 사랑이 꿈틀거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손 내밀고 웃게 만드는 시도 많다.

‘탑이 춤추듯 가네 / 5층탑이네 / 좁은 시장골목을 / 배달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 아슬아슬 무너질 듯 / 양은쟁반 옥개석 아래 / 사리합같은 스텐그릇엔 하얀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 다보탑이겠는가 / 한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 밥먹은 시장 사람들 부처만 같아서 / 싸는 똥도 향그런 / 탑만 같겠네’

복효근 시인의 ‘쟁반탑’이다. 읽을수록 웃음이 나고, 눈에선 눈물이 난다. 우리들 가난한 살림이 저 아래 주머니에서부터 만져지는 정 깊은 시다. 이 시를 읽으면 웃음과 힘이 함께 난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국밥이 한 그릇인데 /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 시집이 한 권 팔리면 /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 박리다 싶다가도 /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다. 역시 눈에선 눈물이, 입에는 웃음이 나게 하는 작품이다. 때론 ‘그래!’하고 무릎을 탁 치면서 ‘그렇지, 그래!’하며 눈물을 닦아내게 하는 시. 이것이 웃음을 주기도 하고, 또 시 자체가 웃고 있는 시다.

물론 위의 두 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많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지금 우울하고 기운이 없는가. 그럴 때는 이런 시를 읽어 주시길. 그러면 손끝이 가려우면서 손바닥이 더워 올 것이다. 희망이 근질근질 살아날 것이다. 기운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링거 한 병 같은 시가 될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치유의 대상이 많다. 그림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시가 그렇다. 여기서 필자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불행’이라는 이 시는 불행하다고 미워하지 말고 끌어안으면, 뜻밖에 따뜻한 손이 돼 우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던지지 마라 / 박살난다 / 잘 주무르면 / 그것도 옥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