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정영식 신부의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78) 나를 사정하라!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입력일 2009-09-15 수정일 2009-09-15 발행일 2009-09-20 제 266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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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치의 삶 위해 스스로 성찰하고 평가해야
하느님의 뜻·신적 신비 이해하기 위해 사정활동 필요
하느님의 뜻을 인정하는 기투의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사정’(Appraisal) 활동을 해야 한다. 마치 정부의 사정 기관이 하급 기관들을 감사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고치게 하듯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사정’을 통해 늘 형성 사건을 성찰하고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성모님, 열 두 제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사정활동을 잘했다는 점이다. 사정 활동은 영성생활의 꽃이다. 꽃 중의 꽃이다.

이 스스로의 사정활동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경외’(Awe)와 ‘주의’(Attention)다. 경외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믿음에 대한 경탄이다. 동시에, 하느님 뜻에 어긋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의는 이 경외의 성향과 하느님 현존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나오고 성장한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를 느낄 때, 우리는 과거의 전통들과 현재의 형성의 장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더 하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바로 ‘머묾’(Abiding)이다. 우리는 경외와 주의 속에서 하느님께서 지시하시는 방향이 깨달아질 때까지 머물러야 한다. 머묾은 우리가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가지 마음의 성향은 우리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 꼭 실천해야 할 영적인 예비단계다.

경외와 주의, 머묾은 결국 ‘파악’(Apparehension)으로 귀결된다. 여기서는 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아니다. 경외와 주의, 머묾을 통해 우리는 정신을 통해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마치 어둠 속에서 태양의 존재를 모르듯 그렇게 모르고 있었던 것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다. 하느님 사랑의 광대함을 포착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깨닫는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조화롭지도 못하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더라도 고통 받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나 큰 불이익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하느님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경외, 주의, 머묾을 통해 접근한다면 상황 자체가 변한다.

반 형성적인 길에서 ‘형성적인 길’(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미리 형성해 놓은 신비로의 길)로 움직여갈 수 있다.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부조화와 상처, 실망, 갈등이 형성하는 신적 신비(이 세상 모든 것이 당신의 신비로 형성되도록 초대하신 하느님)와 함께하는 ‘조화’의 방향을 향해 움직여 나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동안 정신적 차원에서만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하고 생각하고 실천해 왔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많고 불평과 불만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정활동을 통해 우리는 형성하는 신적신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영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의 삶이란 영적으로 시작하고 영이 인도하는 힘을 받아서 정신을 작용시키고, 마지막에 영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리고 나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영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넘쳐난다. 관상은 누구나 가능하다. 관상의 삶이란 사정 과정을 통해서 마지막에 ‘예!’라고 응답하면서 실천을 하는 것이다. 관상은 또 하느님의 뜻에 합치된 상태에서의 삶이다.

물론 일상 안에서 합치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 도박, 텔레비전 등 방해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많은 방해요소와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력한다면 하느님과 친밀함의 관계에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묵상의 상태에서 기도의 상태, 기도의 상태에서 관상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 즉 삶을 정신의 차원에서 영적 차원으로 성장 시킬수 있다.

우리가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 ‘예!’라고 말할 때, 우리는 명백히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조차 희망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답하면 원하는 응답이 돌아온다.

하느님의 뜻을 인정하는 기투와 마음을 가지고 영적인 차원, 정신적인 차원을 모두 사정을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부르심이 들릴 것이다. 그때 콘 목소리로 ‘예!’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엄청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런 수준에 다다르면 아무리 희망이 없고 고통스럽고 처절한 상태라 할지라도, 큰 희망으로 행복할 수 있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