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정영식 신부의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69) 은총과 더불어 나아가기 ④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입력일 2009-07-08 수정일 2009-07-08 발행일 2009-07-12 제 2656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초월적 의미 깨닫게 하시는 하느님
이제부터 본격적인 영성 수련에 도전해 보자.

우리는 영성 ‘수련’(修練)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 수도자가 되기 위해선 일정기간 수련기간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수련은 수도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모든 이들에게 수련은 필수 과정이다. 여기서의 수련은 단순한 학업의 성취와 인격 도야에 그치지 않는다. 수련은 실천적 의미가 강하다. ‘지금 여기서, 전인격적으로, 전 실존적으로, 몸으로’ 해야 하는 것이 수련이다.

우리는 은총의 도움으로 그분을 따르도록, 기투(나 자신을 포기하고 하느님 뜻에 온전히 내어던짐) 하도록 되어진 존재다. 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가 무엇인가. 스승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열망하는 사람이다. 우선 예수님(스승)이 가르치려는 것을 알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영적인 통찰력, 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예수의 삶을 따라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수련이다. 과거 중국 무협 영화에 보면 주인공이 어렵게 스승을 만나, 일련의 어려운 과정을 거친 후 진정한 고수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 힘든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수련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형성적 영성에서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면밀히 진단하는 과정(사정 과정)에 있어서 예비적인 3가지 영적 성향을 말하고 있다. ▲경외(awe) ▲머묾(abiding) ▲주의(attention)가 그것이다. 이는 운동경기 전에 하는 선수의 준비운동에 비교할 수 있다. 시합 전 마음과 정신과 몸의 준비 상태가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침은 당연하다. 여기서 이 세 가지 영적인 예비 성향은 모두 영어 알파벳 A로 시작되는데, 형성적 영성에서는 이를 ‘영적인 사정과정과 관련된 A 성향들’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 성향들은 여섯 가지 기본 수련 내용들에 의해 이행될 수 있다. 그 여섯 가지는 ▲침묵 ▲형성(지향)적인 읽기 ▲묵상적인 성찰 ▲기도 ▲관상 ▲활동이다.

우선 경외라고 하는 성향은 우리의 마음속에 침묵을 위한 공간을 창출해낸다. 어떤 대상을 경외롭게 바라볼 때 나는 겸손해지고 마음을 열게 된다. 하느님께서 나를 초월시켜주시고, 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경탄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내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 안에 ‘푹’ 잠기게 된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하느님을 향해 열리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느님께 의지하고, 경탄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하느님 안에서 침묵할 수 있다. 경외는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때 우리는 침묵을 하고, 성령의 속삭임이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침묵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수련의 첫 단계다. 침묵을 해야 하느님 말씀이 내면 속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면 이제 형성적 읽기로 나아간다. 수련의 두 번째 단계다. 하느님의 뜻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바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절절히 그리워한다고 해서 성령의 속삭임이 귀에 바로 들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일정기간 머무는 동안 형성적 읽기를 통해서, 형성적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이때 우리를 형성적 읽기로 이끄는 것이 바로 머묾의 성향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의의 성향은 형성의 장(세상)과의 연관 속에 묵상적인 성찰이라는 세 번째 단계의 수련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까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신앙인으로서 영적인 삶을 살고자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동이다. 하느님 안에 침묵하고 있으면 뭔가 더 깊은 것을 깨닫기 위해서 마음이 기울여지고, 깊은 뜻을 깨닫기 위해서는 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긴 곳을 가게 되고, 그곳으로 가게 되다 보니까 영적 독서를 갈망하게 된다.

당연히 성경을 중심으로 다양한 영적독서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형성적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의미를 점점 더 많이 찾아내기 위해 형성의 장과의 연관 속에서 묵상적 성찰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는 형성적 읽기를 통해 느낀 바를 현실의 삶과 연관시켜 역동적으로 생각하는 단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직면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신앙 안에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사건 안에서 초월적 의미를 깨닫고 분별할 수 있도록 이런 방식으로 이끄신다.

영적 수련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과 성령의 움직임에 대해서 깨닫고 이해를 하게 되면 이제는 기도할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바로 네 번째 수련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