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노벨상을 받은 김대통령에게”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00-10-22 수정일 2000-10-22 발행일 2000-10-22 제 222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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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이 2002년까지 하의도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주변에 평화의 탑과 평화의 길, 통일 소공원 등으로 꾸민 1500평 규모의 「노벨평화공원」을 조성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어린 시절 꿈을 키웠던 하의도에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노벨평화공원이 들어서면 우리는 올림픽공원에 이어 또하나 역사적인 공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공원에 민족적 긍지를 한껏 높인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의미가 투영돼 후세에 길이 이어지길 바라며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와 국민의 품격을 높여주기를 기대한다.

본래 상이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해도 받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선 우등상은 물론이고 개근상이나 하다못해 정근상 수상자 명단에 호명되기만 해도 어깨가 으쓱 해지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물며 상 중의 상으로 일컬어지는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된 일인가.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한국과 한국인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 하다. 그것은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확인이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면서도 한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잃지 않았고,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 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온 데 대한 평가이자 보상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일제 식민통치와 전쟁, 그리고 분단을 겪으면서 상처받고 위축돼 급기야는 스스로도 비하해마지 않았던 한국인의 자긍심을 일거에 회복시켜 주었다.

우리는 또 김대통령이 지난 수십년의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 속에서 민주화와 인권과 통일이라는 험난한 과제를 향해 외길을 달려왔음을 기억한다. 그래서 김대통령의 수상은 그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개인의 정치이력을 빼놓고는 설명될 수 없으리라.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 '인동초' 라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따낸 것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이번 수상의 의미는 거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수상은 김대통령 개인과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높이 평가 하는 인증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미래까지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노벨평화상으로 한국인 모두는 높은 자긍심을 지니게 됐지만, 나라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과제와 우리 내정의 여러 현안을 해소해나가야 하는 문제는 엄연히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지금 국내적으로 정파, 지역 계층 간에 이해, 화해, 협력의 풍토를 제대로 가꾸지 못하고 있다. 이번 수상 결정의 주요 이유인 남북의 화해협력 기류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남남 갈등' 이 존재함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김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이 불화의 국내 기류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정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내외에서 각광을 받을수록 야당은 경계심을 부풀리게 마련이다. 김대통령의 영광이 여당까지 빛내 주도록 놔뒀다가는 경쟁에서 밀려나고 만다는 위기감이 생길 수도 있다.

자연히 대여 공세의 정도를 높일 수도 있다. 행여 김대통령이 평화상 수상에 고무되어 독선 독단 독주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굳이 「당적 이탈」과 같은 조치를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대통령은 이제 정당, 정파의 우두머리라는 자기 제한적 지위에서 벗어나 국가적 국민적 지도자, 나아가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 그 제1조건이 정치문제에 대한 「정파적 고려」의 극복일 것이다.

김대통령은 이제 외치에 치중하다 내치를 망쳤다는 얘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국가적 현안 해결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것이 노벨평화상과 관련한 세간의 억측을 털어버리고 수상의 영광을 민족의 자산으로 보존하는 길이다. 정부가 IMF를 극복했다고 큰소리친 지가 바로 엊그제인데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제는 제2의 경제위기를 걱정할 정도다. 윗목이 따뜻해지기는 커녕 이랫목까지 식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통령의 수상은 영광인 동시에 부담일 수도 있다. 수상의 영광을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좀더 열린 마음으로 비판과 반대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민족과 국가의 큰 그림을 그리는 상생의 정치를 펴나가야 한다. 그럴 때 노벨평화상 수상은 진정 역사의 축복이 되고 민족사의 전환점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