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희망을 가르치는 사회가 돼야…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00-11-12 수정일 2000-11-12 발행일 2000-11-12 제 2225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세상이 어수선해도 세월은 흘러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다. 강원도 오대산의 단풍이 남녘 끝에까지 와서 절정을 이루다 낙엽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 낙엽이 뿌리고 돌아가는 계절,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삶의 근원을 차분히 생각해 볼 때다.

11월은 위령성월.

늦가을은 자기반성과 함께 사람에 대한 연민도 느끼는 계절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듯 우리 모두는 떠나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이 쓸쓸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그런 상념을 통해 세상에 대한 눈뜸과 자기 삶의 향기를 만날 수가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삶인데 마음마저도 넉넉하게 나누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인색한 인생살이가 아닐까? 지난 달 연극인 이주실씨가 종로의 연강홀에서 창작극 한편을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올렸다. 소위 「대안학교」인 전남 영광의 영산성지고 연극부 학생 14명과 함께 자신의 창작극 「날자, 날자 꾸나」를 8개월 고투 끝에 공연한 것이다. 이주실씨는 93년 암3기 진단을 받고 현재 의사로부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선고를 받은 상태다. 이씨는 음식물을 삼키면 바로 토하는 고통 속에서 「교문 밖 아이들」을 정식 무대에 세운 것이다.

대안학교에는 입양아, 미혼모, 가출소년들, 이른바 「교문 밖의 아이들」이 다닌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이 영산성지고에서 특강을 했고, 『나보다 더 아픈 아이들을 만난 느낌』이라며 올해 2월부터는 아예 이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 학생들에게 연극지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꺼져가는 생명을 부둥켜 안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그가 왜 이들과 함께 연극에 몰두했을까하고 한참동안 생각해 볼 시간을 그는 나에게 주었다. 이씨는 교문 밖 아이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그대로 무대에 옮긴 역할극을 통해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었으리라. 또 그들 에게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삶 속에서 희망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으리라.

『배역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상처준 어른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연극 치료』였다는 그의 설명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 이씨는 이런 얘기도 했다.

『아이들과 연극에 몰두하다 보면 몸 속의 건강한 세포들이 암세포를 몰아내는 느낌마저 들어요』

생명을 지탱하는 건강한 세포는 사람 속에서, 희망 속에서 생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희망은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생명의 등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랑과 희망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보여 주고 있는가!

1958년부터 지난 해까지 우리 나라에서 국내외에 입양된 어린이는 모두 20만명, 그 가운데 28%인 5만7000여명이 국내에, 나머지 71%인 14만여명은 해외에 입양됐다. 해외입양이 국내입양의 곱절을 훨씬 상회한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 들이 우리 나라가 이 정도로 잘 살게 되었는데 아직도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킨다고 비난하며 국가의 수치라고 부끄러워한다. 그렇다. 참으로 부끄러워 할 일이다. 그러나 해외입양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우리는 더욱 부끄러워해야 한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 가운데 40%에 가까운 아이들이 심각한 「의료적 문제」를 갖고 있거나 문제의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들 중에는 친부모라도 키우기 어려운 불치의 병이나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도 많다. 물론 이들을 키워줄 양부모를 국내에서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년 한해 국내로 입양된 장애 아동의 수는 불과 6명으로 전체 입양아의 0.1% 수준이다. 그러니 그토록 어려운 장애아를 입양해 키우는 외국인 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송구스럽고, 정말로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얼마전 강남의 한 지역 주민들이 그곳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투쟁까지 벌였다. 물론 대법원이 패소판결을 내렸지만….

이같이 우울한 소식이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특수학교를 지을 때, 주민들은 번번이 『그런 시설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진다』 며 설립을 저지했고, 나아가 당국에 진정서를 내는가 하면 공사장 입구에 바리 케이트를 친 채 길에 드러눕는 등 심한 반대를 해왔다. 장애인 특수학교를 혐오시설처럼 보는 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다. 약자의 불행에 방관도 무관심도 아니고 오히려 방해를 하는 사회, 그래서 이주실씨의 고귀한 사랑이 각박한 이 현실 속에서 실로 한줄기 빛, 위안이요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