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폭력 불감증에 걸린 사회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00-12-03 수정일 2000-12-03 발행일 2000-12-03 제 2228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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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으로 걸어간다. 길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차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서울 시내 거리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라디오에서는 어디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교통대란이 빚어졌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이 너무 고단해서일까. 돌멩이와 각목, 쇠파이프가 거리에 등장했다. 분출하는 집단시위를 그대로 지켜만 볼 것인가?

농민, 근로자에다 공무원까지 집단화 돼 내세우는 주장을 다 받아 들였다가는 나라살림이 거덜나는 것은 물론 개혁은 물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정부가 각종 집단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거나 이들에 영합할 움직임을 보여 문제다. 자칫 『데모를 하니 약발이 있더라』며 사위가 더 극성을 부릴까 걱정스럽다. 결국 폭력을 부추기는 꼴이다. 물론 이해집단들의 합리적인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는 힘에 밀려 무리한 주장까지 받아들이는 쪽으로 흐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농어민의 부채탕감과 농어가부채특별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자를 깎아주고 집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정부의 빚 탕감 방침은 문제가 있다.

소수의 농촌 대농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도시근로자나 영세농민과의 형편성 시비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원칙을 갖고 집단 사위를 정면 돌파해 시위해서 얻을 것 없다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금년에 우리는 의사파업이라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병원은 문닫지 않으리라는 사회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이었기에 충격적이었다. 의사에게만 희생을 요구하고 이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의 가치 체계나 교육이 인성, 윤리에서 경쟁수단이 되는 기능 위주로 바꾸는 상황에서 의사들에게만 고전적인 윤리와 양식을 요구하기는 어려운 면도 없지는 않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의사를 포함해 사회의 대표적인 다른 전문직들도 파업을 해야만 할 정도로 극단적인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 이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경향이 힘겨루기가 일상화하는 체제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힘겨루기로 낭비하는 엄청난 내적 에너지보다도 더 큰 문제는 집단간 싸움의 와중에서 개개인의 존엄성과 개성이 묵살된다는 점을 염려하는 것이다.

사회가 이처럼 집단으로 분열되면서 집단체제의 그늘 아래 인간의 존엄성이 묵살된다면 최후에는 사회라는 공동체의 해체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지나치게 실리와 집단이익 위주로 서로 경쟁을 하고 다투는 가치관에서 벗어나 무엇 때문에 우리가 어울려 사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얼마전 일곱 살짜리 딸을 집안에 가두고 때리는가 하면, 뜨거운 샤워물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못본체하거나 대소변을 못가린다고 상습적으로 자녀를 폭행한 친권폭력을 보았다.

1년에서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두집 부모의 자녀학대 사례는 자식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보는 한 사례였다. 왜 우리 사회가 이토록 폭력성향이 점점 더 심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폭력 불감증에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

주먹질이나 발길질, 쇠파이프를 휘둘리고 화염병을 던지는'물리적 폭력' 만이 폭력은 아니다. 근로자들의 집위, 시위도 문제지만 대낮 서울 도심에서 확성기를 통해 몇 시간씩 노래와 구호를 마구 뿜어대는 소음폭력도 심각한 수위에 와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라. 각종 토론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이성과 합리는 없고 독선과 격한 감정만이 판을 치고 있다. 「사이버 폭력」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와 안맞는다고 해서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입을 막아온 국가정보원의 행동도 일종의 '정보 폭력' 의 잔재다. 결국 폭력은 다투는 사람들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고 피해를 보게 한다.

모두가 이익을 위해 다투다가 모두가 죽게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더욱 위험스러운 것은 우리 주변이 온통 폭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감증이다. 폭력을 우리 사회가 방조하고 나아가 폭력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