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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면희 교수의 생명칼럼] 11. 한면희 교수의 생명칼럼

입력일 2008-03-30 수정일 200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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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생명문화와 백두대간, 풍수

고대 문헌 ‘산해경’에 따르면, 동이족은 사양하기를 좋아해서 서로 다투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공자께서도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애석해하면서 동이족이 사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우리 선조는 인간생명만이 아니라 자연생명에 대해서도 독특한 문화를 조성했다.

우리 선조의 생명존중은 땅과 직결되어 나타나는데, 대표적으로 풍수 및 백두대간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이것은 흔히 서구 방식의 태백산맥 개념과 대비되는 것이다. 1903년부터 수년간 일본인 학자 고토 분지로는 서양의 지리학 개념에 의거하여 조선 땅 곳곳을 파헤치며 40여 개 이상의 줄을 그어댄 바 있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을사늑약이 강제되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이 선언된다. 그리고 고토 분지로가 그어댄 줄 가운데 일부가 취사선택되어 태백산맥과 마식령산맥, 소백산맥, 차령산맥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다.

물론 신의주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도 부설된다. 산맥체계가 땅 속 지질개념에 의거한 것이기 때문에, 조선 땅에 매장된 지하자원은 채굴되어 철도와 해로를 거쳐 일본으로 운송된다. 그리고 그런 자원은 군수물자로 전환되어 마침내 대동아공영권을 외친 일본에 의해 태평양전쟁의 무기로 쓰이게 된다.

산맥개념이 땅 속 자원을 이용하는 개념인데, 그 정도가 심해지면 자연 약탈로 이행하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리 민족의 백두대간 개념은 성격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땅 바깥의 지형개념체계에 따른 것이다.

비가 내리면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내와 천, 강을 이루며 바다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때 비탈로 빗물을 흐르게 하는 요인이 바로 산줄기인데, 그런 것 가운데 중국과 히말라야 내륙으로 이어지는 주된 몸통이 바로 백두대간이고, 거기서 나온 큰 줄기에 여러 이름을 붙인 것이 정맥(또는 정간)이다. 예컨대 낙동강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사이에 내리는 물줄기가 합세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백두대간 및 정맥은 자연에서 조성되는 생명의 기운이 흐르는 통로다. 마치 동의학이 병을 치료하고자 침과 뜸으로 경혈에 자극을 주고자 할 때 의거하는 인체 내 경락체계에 해당한다. 이에 경락체계에 따라 기가 원활하게 소통되도록 함으로써 몸의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듯이 자연의 경락체계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이것은 풍수학으로 나타났다.

샤머니즘과 결합된 음택풍수는 빗나간 것이지만, 마을 공동체와 도읍을 정할 때 사용하는 양기풍수가 본령이다. 인간의 문화 공동체는 물을 얻어야 성립한다. 그래서 풍수는 물을 얻음(득수)을 으뜸원리로 삼고, 이것을 위해 습기 머금은 구름을 가두어야(장풍) 한다. 풍수도 이 두 표현에서 따온 것이다. 흔히 백두대간이나 정맥의 큰 줄기를 타고 내려온 것을 북현무라 하고, 좌우로 뻗은 가지를 좌청룡과 우백호라 한다. 그리고 남쪽 주작이 다가온 음의 기운을 양의 기운으로 감싸니 이 사이가 바로 명당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명당이 인간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서양의 산맥체계와 확연히 구분된다. 풍수학의 명당 인근에는 반드시 천이나 강의 형태로 물이 흐른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연유는 그 지역에 습기 머금은 구름을 가두어 농도를 짙게 하여 비를 내리는 높은 산줄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이 있어서 초록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스스로가 탄수화물로 크는데, 이것은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고, 이것은 다시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며, 생물학적 시한이 끝난 사체에는 박테리아가 작용하여 무기물을 유기물로 되돌린다. 생명 에너지 순환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산의 고도가 있기 때문에 생물 종의 다양성도 구현된다. 따라서 인간의 명당 언저리 생태계에서는 환경학자가 소중히 여기는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복합성이 함께 구현된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평화를 존중하면서 생명을 사랑하는 고유문화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각종 개발로 생기가 조성되던 명당은 갈수록 사라지고 질병과 죽음을 초래하는 나쁜 기운이 감돌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 선조가 구비했던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할 때라고 본다.

(프란치스코, 전북대 교수)